3. 삭제되고 있는 아이들의 시간

by 글로 쓰는 바람

”요즘 뭐 하고 놀아? “


이런 비슷한 질문하는 광고를 보다가 "뭘 하고 놀았지?" 생각해 본다.

좁은 마당, 동네 공터나 놀이터에서 놀지 않았을까?


조금 더 기억을 짚어보니 꼬꼬마 시절, 처음 세 발 자전거를 갖게 되면서 그야말로 내 인생이 달라졌다. 그걸 타고 온 동네 오르내렸고, 가까운 학교 운동장까지 진출하여 그네에 앉고, 시소도 타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면서 나랑 비슷해 보이는 동네 꼬마들을 처음 만나, '친구'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옆 집뿐만 아니라 좀 더 멀리 사는 애들 조차 약속 없어도 해 뜨면 동네에서 자연스레 만나 어울리니 내 세상의 면적도 조금씩 넓어졌다.


기억하나요, 세발 자전거?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집 밖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다 비슷할 거라는 막연한 상상이 자연스럽게 깨지고 바뀌는 순간은 ‘어울려 놀면서’였다.


“난 6살, 너는 5살, 거기 쟤는 7살. 어라 나랑 키가 같은 쟤는 벌써 학교 다닌데. 와 무려 2학년이래! 언니(혹은 오빠)야!”.


이뿐 아니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도 집집마다 삶의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차츰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데 영희네 할아버지, 할머니는 차로 한 참 가는 동네에서 농사짓는다 하고, 철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다며(이제 보니 아마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조금 부러운 눈으로 날 보곤 했다. 대가족과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 기억엔 이런 장면이 있지만, 산과 바다가 가깝고 들판을 보면서 자란 이들은 또 다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너무 당연한 듯, 어린이집-유치원의 순서로 아이의 예닐곱 살까지 시간들이 채워진다.

그래서 그럴까?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다 닮은, 아니 똑같아 보인다. 같은 판으로 찍어낸 판화 같다.


어린이집 들어갈 무렵부터 시작된 ’ 무엇인가 배우는 것‘은 무려 10년 넘도록 거듭되고, 그 긴 시간 동안 겪게 되는 모든 것을 모아보면 대한민국 모든 이들이 박제된 듯 닮아 있다. 입시, 공부, 성적, 대학, 미래, 요즘은 더 구체적으로 취업까지. 지금의 청년들에게 유년시절의 하루를 묻는다면, 나올 수 있는 대답은 저 단어 연결고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고 자란 곳이 어디든 말이다.


이 풍진 세상 단단하게 살라치면 돈도, 직업도, 기왕이면 길고 튼튼한 학벌도 있어야 한다. 말마따나 모두 태어나면서 황금수저 가족을 만나는 게 아니니까. 예나 지금이나 이건 절대명제였고 지금은 가히 정언명령 수준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하고 노력도 해야 한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하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건 자칫 무모한 낭만이고 어리석은 조언이다. 태어난 이상 마땅히 인생성공을 향해 한 판 승부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가 앞선다.


전에 없는 일자리도 생기고 모든 게 나아지는 것 같은데 걸음마도 못 뗀 애들이 같은 종목 겨루기로 휩쓸려 가고 있다. 세상 좋아지는 만큼 조금 더 다양한 방법, 서로 다른 접근,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풍요로워질수록 더 부족해 보인다. 경우의 수가 자꾸만 줄어들고 있으니, 꼬마들의 세상부터도 어른의 반칙이 당연해지고 있다.

점점 희미해지는 아이들의 모습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였을까?


그건 아마 친구들과 뛰어놀던 게 어느 세대들의 ’ 그땐 그랬지 ‘로만 남게 될 즈음부터, 태아에게 영어로 된 동요를 들려주는 어른들이 늘어날 때부터였다.

스스로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데 경쟁을 알려주고, 걸음마 떼기 무섭게 어른의 뜻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꾸려주길 거듭하니, 조금씩 다르게 키워보려던 생각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다르려야 다를 수 없어진 것이다. 이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이들은 날 때부터 투전판보다 더 살벌한 한판 승부에 던져졌다.

그 애들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여기 나, 거기 그대.

모두 행복을 원하지 않는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가?



해야 하는 아이들의 시간


그렇다면 아이들의 시간이 알록달록해져야 한다.

천진난만, 유치 찬란, 그리고 심지어 이불 킥하고 싶게 되는 기억까지. 다양하고 갖가지여야 한다. 그래야 잘 자란 어른이 된다.


아이 시절을 건너뛰고 자란 어른은 없다.

내 아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지나쳐 자꾸만 어른의 손으로 아이의 시간을 빚다 보면, 그 시간을 전부 차지해 버리면, 아이들은 결국 지워진다.


그 후에는 행여라도 공격받을까, 내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두리번거리며 쩔쩔매는 어른만 남게 된다.

그 어른은 어렵사리 만난 아이의 시간을 또다시 지워버린다.

알고 배운 게 그뿐이니. 이렇게 반복되면 어설픈 채 난폭해져 버린 우리만 남는다.

이미 다가오는 현실 같아 두렵다.


이제라도, 아이들의 시간에 함부로 들어가 만든

어른의 방벽을 걷어내자


내 아이와 이웃의 아이 모두, 투닥거리고 부대끼며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도록 더 넓게 키워내야 한다.

얼마든지 크게 펼쳐, 마음 놓고 내 시간의 색을 찾고 그릴 수 있는 튼튼하고 큰 놀이판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시간을 어른 마음대로 가로채어 휘젓기를 멈추자.


아이들의 손으로 저마다의 기억을 만들면서 자라도록 든든하게 지켜주는 일.


어른이 할 일이다.


어른다운 일을 제대로 해야 할 때.

더 늦으면 안 될 시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