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이 형들 축구하는데 끼었다. 중고생 축구 하는 곳에 여섯 살 난 녀석이 무슨 배짱으로 끼어들었을까. 가끔 밤에 나랑 축구하는데, 당연히 아들 중심으로 축구를 했다. 차기 좋게 던져주기도 하고 뺏겨주기도 하고 무조건 골인도 시켜주었다. 당연히 아들은 자기가 축구를 매우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끼어들었다.
대가족여행 중일 때도 제 아버지와 팔씨름하던 것만 생각하고 전 가족이 보는 앞에서 초등학교 4학년인 사촌 형에게 팔씨름을 도전했다. 이 천진한 아들은 팔씨름에서 아버지도 이겼는데, 아버지보다 훨씬 쪼그만 사촌 형에게 진 것에 대해서, 형들과 축구하면서 공 한번 만져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풀이 팍 죽어 있었다.
이기는 것만 가르쳐야 하나, 지는 것도 가르쳐야 하나.
이 어린 아들의 큰형은 고등학생이다. 어느 날 어린 동생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이 황방산이라고 얘기한다. 한라산보다 높다고. 어린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황방산에 올라갔는데, 힘들게 올라온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아파트보다 훨씬 높은 곳에 올라왔다고 자랑거리를 만들어줬고, 그것을 형 앞에서 자랑하자 형이 부풀려준 것이다. 내가 끼어들었다. “애들은 어렸을 때 가르치는 대로 믿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제대로 가르쳐라. 진실만 가르쳐!” 그러자 “아니에요. 세상엔 나쁜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해요. 제가 어렸을 때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다고 가르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상처받은 줄 아세요? 세상의 진실을 제대로 가르쳐야 돼요.”
아니 진실을 가르치라는 말에 진실을 가르쳐야 하다니. 맞다. 세상엔 거짓이 있고 악함이 있고 폭력이 있고 새치기가 있고 신호 어김도 있으며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버리기도 한다. 이게 진실이다. 어렵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 그것은 어른들이 거짓말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1학년 담임할 때이다. 1학년은 학교생활을 잘 모르니 무엇이든 가르쳐야 한다. 학급일지에는 수업시간표와 선생님 이름, 수업 내용을 기록하게 되어 있고 조회, 종례 사항도 기록하게 되어 있다. 수업 내용에는 과제를 쓰는 난이 있다. 학급 서기를 맡은 아이가 작성하는 학급일지를 보니 빈칸이다. “빈칸으로 두지 말고 채워라.”, “선생님이 과제 안 내주셨는데요.” 그래서 별생각 없이 “그냥 써.” 했더니 “거짓말하라고요?” 이런 일은 계속됐다. 수업시수를 위해 실제론 하지 않은 수업을 써넣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왜 하지도 않은 수업을 했다고 써요?”
학생들이 바르게 살도록 가르쳐야 하는 교사로서 난감할 때가 많다. 참관수업 할 때만 칠판 한쪽 귀퉁이에 써지는 학습 목표, 그날만 입고 오는 양복 등. 그럴 때도 있다는 것을, 때에 따라서는 안 한 것을 한 것처럼, 한 것도 안 한 것처럼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하는가.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좋은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쁜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나쁜 것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따라 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얻으라는 것이다. 즉 아이에게 무조건 선한 것, 좋은 것, 이상적인 것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와 상대되는 악한 것, 나쁜 것, 현실적인 것도 가르쳐야 하고 그런 것을 따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할 수 있는 가치 판단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해 본다.
음란물 같은 경우도 그렇다. 교실 컴퓨터에서 제일 신경 쓰는 것이 바로 음란물이다. 행여 학생들이 볼세라 차단하고 감시하고 난리를 피운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만 막으면 뭐 하나, 교문만 나서면 바로 저희들 마음대로 접할 수 있는데. 막는 게 능사가 아니고, 감추는 게 능사가 아니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할 텐데. 우선 쉬운 대로 뺏고, 감추고, 못하게 막고. 막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면서 손 놓기 쉽다. 더 나아가 교사가 앞장서 현실을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이사장 오는 날 아침 수업 빼먹고 청소시키는 것 – 평상시엔 수업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들이 한 시간이라도 빼먹으면 야단치면서. 안 한 수업한 것처럼 학급일지 쓰라고 하고, 안 한 학급 회의를 한 것처럼 소설 쓰라고 할 때 – 교단에서 진실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했으면서.
낯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