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가장한 거짓
교육 실습할 때 연구수업 할 학급에서 학생들과 잡담을 나누던 중 오갔던 대화다. “선생님께서 질문하시면 우리 모두 손을 들게요.” “아는 학생만 손들어야지.” “아뇨, 모두 손을 들되 주먹을 쥐고 손을 들면 모르는 학생, 손바닥을 펴고 손을 들면 아는 사람으로 약속을 하면 되잖아요.” “아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야지 그게 무슨 짓이야?” “에이, 선생님 우린 다 그렇게 했었는데요.” 학생들은 햇병아리 선생을 생각하면서 해준 이야기였지만 교사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알게 해 준 대화였다. 나만은 그렇게 하지 않아야지, 다짐했지만 돌이켜보면 교사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참 많았다.
그중 제일 가슴 아픈 것은, 서울대 진학을 놓고 고민하며 내게 도움을 청했던 학생에게 한 말이다. 그때 그 학생은 서울대 농대에 진학할 수 있는 점수였는데, 문제는 학교에서 최초로 서울대에 한 명이라도 합격시키고자 이 학생에게 농대로의 진학을 권장하는 상황이었고, 이 학생은 농대에 가지 않고 다른 대학의 경영학과에 가고 싶어 했다. 날 믿고 상담을 의뢰한 이 학생에게 학교 상황을 대변해서 이야기해야 하느냐, 아니면 학생 편에 서서 이야기해야 하느냐 하는 난감한 처지였다. 그때 학생에게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이야기했어야 하지만 농대 진학 후의 진로 상황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면서 농대를 마치고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결국 그 학생은 서울대 농대에 지원했고 무난히 합격하였지만, 곧 그만두고 재수해서 다음 해에 다시 서울대에 합격하였다. 물론 내 말만 듣고 농대 지원으로 마음을 결정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이 얼마나 비겁한 행위인가.
그 후 난 일제강점기 때 일본말로 수업해야 했던 한국인 선생님의 처지와 유신 때 유신을 비난하지 못했던 선생님들의 고충, 그리고 반상회에 억지로 나가 유신체제를 홍보해야 했던 선생님들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그런 어려운 시절 다 지나간 후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한편, 그런 큰 어려움이 없으니 작은 것으로나마 진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한때는 학생들에게 내가 화약을 안고 불로 뛰어들라고 하면 뛰어들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까지 호언장담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최소한 내가 진실로 믿는 것은 자신이 있게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되, 미심쩍거나 찝찝한 것은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비겁한 타협을 하는 정도이다.
학생들 앞에서 떳떳해야 하고 최소한 낯 뜨거운 일은 없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