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이 넘은 어르신과 대화하면서 어느 정도 뜻이 맞았다.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을 해내셨던 분이기에 이젠 다 이루셔서 여한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 눈을 감기 전에 꼭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출간했던 소설의 후속작을 마무리해야겠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그 일을 마무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자질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핑계로 못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도시의 으슥한 골목에서 서성대는 청소년들이 떳떳하게 머물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 입시와는 상관없는 다양한 내용으로 수업해보고 싶은 일, 농산어촌 학생들이 도시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수업자료를 만드는 일 등
죽은 후 심판대에 서는 날 “넌 무엇을 했느냐?”라는 질문에 “예, 평생 생활에 매여, 하고 싶은 일을 머릿속으로만 해왔고, 해야 할 일에 과감하게 나서지 못하고 망설이다 만 왔습니다.”라고 밖에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