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는 시험 성적을 석차 순으로 교무실 앞 벽에 게시했다. 성적이 게시되면 무조건 1등부터 자기 등수 나올 때까지 확인하는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아예 끝에서부터 확인하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창피해서 확인하러 가지 않아도 친구들이 와서 알려주었으니 이래저래 창피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때 다짐했다. 내가 교사를 하게 되면 절대 학생들 앞에서 성적으로 공개하지 않겠다고.
우리 집 김장하는 날이었다. 전날 간해놓고 김치를 버무리기로 한 날. 어머니가 매우 아프셨다. 학교에 가서도 어머니가 걱정되어 있을 수가 없었다. 큰맘 먹고 교무실에 가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조퇴시켜 달라고. 그러자 선생님께서 “야, 차라리 공부하기 싫어서 그냥 집에 간다고 해라. 꾸며댈 것이 없어서 고3이란 놈이 어머니 김장 도와드린다고 조퇴하냐?” 교무실에서 창피를 톡톡하게 당했다. 기어이 선생님을 졸라서 조퇴했는데, 정말 집에 잘 왔다. 아픈 몸으로 겨우 김장하시던 어머니를 아주 많이 도와드릴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몇십 년 동안 말씀하신다. 아들이 김장 도와주려고 조퇴했다고. 그날 아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김장 못 했을 거라고.
이것도 고3 때 일이다. 예비고사를 보고 난 후 합격자만 본고사를 치를 때인데 예비고사 보기 전에 원서 접수하는 대학이 몇 군데 있었다. 내 딴엔 진지하게 선생님과 상담하려고 갔었는데, 선생님께서 아주 큰 소리로 “선생님들 여기 좀 보세요. 세상이 이놈이 원서 쓰려고 왔어요.” 그때 아마 교무실에 쥐구멍이 없었든지, 내가 쥐구멍보다 크든지 했기 때문에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날 통학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의 망신을 지켜봤던 친구가 끝까지 따라붙었다. 충격을 받은 내가 기차에서 뛰어내릴까 걱정해서였다.
중학교 다닐 때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공납금 미납자를 불러내 집으로 돌려보냈다. 수업료 가지고 오면 수업을 받을 수 있었고 아니면 밖에서 돌다가 종례 때 교실에 들어왔다가 집에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중학교 내내 그렇게 밖으로 돌던 친구가 고등학교 때 또 그런 비슷한 수모를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어떻게 어떻게 수업료는 냈다고 해도 체육대회 때, 소풍 때 돈을 걷는다고 하면 이 친구들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런 경험으로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성적으로 차별하지 않고,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아픔을 덜어주려고 애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 눈엔 고지식하고 학생들에게 잘 속고 빡빡한 선생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명, 단 한 명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내가 욕먹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교사가 있다. 손쉽게 전체를 통솔하기 위해서 한 명을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예를 들어 한 명을 호되게 야단치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어 전체적인 공포 효과를 유도하여 효율적으로 학생을 다룬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하는 교사가 훨씬 더 능력 있는 교사로 인정받고 나 같은 교사는 무능력자로 치부한다. 학생들도 그런 교사의 말을 더 잘 듣는다. 그렇게 길들어 왔다는 의미다.
‘전체를 위한 한 명의 희생’ 우리 사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