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돌아서면 험담하고 심지어 욕까지 하면서 어떻게 얼굴을 마주 대하고선 그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지. 갑자기 두려워진다. 내 앞에서 웃는 사람이 내 등 뒤에서 비수를 들고 있지는 않는지.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얼굴에 속아 저 사람이 날 좋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겉과 속이 같았으면 좋겠다. 입에서 나온 말과 마음이 같았으면 좋겠다. 앞과 뒤가 같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세상은 속고 속임의 연속인 것을. 권투에서도 강한 주먹을 날리기 위해서 거짓 주먹을 연방 날리고, 야구에서도 사인을 읽어내려는 상대팀에게 거짓 사인을 슬며시 보여주고, 축구에서도 헛다리를 짚어 수비수를 속이려 하고, 농구에서도 슛하는 척하면서 패스하고, 패스하는 척하면서 슛하고, 맘에도 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날리고, 국민은 염두에 없지만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학생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항상 웃는 얼굴로 대했다. 나의 가짜로 웃는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학생은 졸업 후에도 내가 제일 좋다고 했다. 만약 그 학생이 내 안에 감춰진 진짜 마음을 알았으면 내가 제일 미운 선생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유치원에서 장래 희망에 관한 이야기 했었나 보다. 집에 들어선 내게 “아빠, 나 뭐가 되고 싶게요?” “난 아빠처럼 될 거예요”라고 한다. 잠시 우쭐했다. 이어지는 아들의 말 “아빠처럼 무서운 얼굴 하고 싶어서요.” 내 마음이야 예뻐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지만, 버릇을 잘 들인답시고 가끔 엄한 표정을 했던 것이 그렇게 무섭게 보였나 보다.
맘에 들지 않는 임금 앞에서 신하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임금의 태도를 고치게 하고 정사를 바로 잡으려면 당연히 불만스러운 표정과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임금의 처지에선 자기 태도를 못 마땅해하거나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당연히 보기 싫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으면 자기를 바로 잡을 기회를 영영 가질 수 없고 결국은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웃는 얼굴만 보는가. 웃는 얼굴 뒤에 감춰진 비웃음을 보는가. 성난 얼굴을 보는가. 성난 얼굴 뒤에 감춰진 사랑하는 마음을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