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아기 낙타가 엄마에게 묻는다. “왜 우리 등에 혹이 있어요?” “응 사막을 건널 때 물이 없어도 버틸 수 있기 위해서란다.” “눈썹은 왜 이렇게 길어요?”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우리 눈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거야.” “우리 발굽은 왜 이렇게 커요?” “발이 모래 속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그리고 말을 이었다. “우리 몸은 사막을 여행하는 데 딱 맞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이니 넌 자부심을 갖고 살아라.” 그러자 아기 낙타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엄마, 우린 왜 여기에 있어요?”
비록 제대로 써먹지는 못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참 많이 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어.”라며 절망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직 많은 것들이 남아 있고 할 수 있는 것들도 무진장 널려있음을 알게 된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포위당한 한 장수가 칼이 부러질 때까지 싸우고 칼이 부러지자, 단검을 빼서 싸우고 단검마저 못 쓰게 되자 신고 있던 가죽 신을 벗어 들고 싸우다 온몸이 칼에 찔린 채 죽어갔다고 한다. 사람들에겐 주어진 것이 많이 있고, 아직 남아 있는 것도 많이 있는 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없다고 생각한 채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내게는 두 다리가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하루 8km를 걸어 다녔던 튼튼한 두 다리, 아직 가보지 못한 많은 곳에 나를 위한 기회가 널려있을 것이다. 어리긴 했지만, 아들을 안고 대둔산을 오르게 했던 두 손, 자판을 두드릴 수 있고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읽게 해 준 두 눈, 글뿐 아니라 아름다운 광경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내게는 귀도 있다. 내게는 입도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있음에도.
오늘 하루가 밝아온다.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내게 주어진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