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며느리
이 남자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옆에서 십수 년 지내면서도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 남자에게는 똥오줌을 받아 내야 하는 병든 어머니가 계십니다. 주중에는 근무하고 일요일엔 아침 일찍 어머니에게 갑니다. 아버지가 병시중하시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아들이 일요일에 가서 이불 빨래며 부엌살림이며 어머니 목욕시켜 드리느라 교회에 갈 시간이 없는 것이죠.
옛날 어른들이 다 그러시는 것처럼 이 남자의 부모님에게도 아들이 제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장남이 제일입니다. 이 남자도 누나나 동생에게 의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일을 혼자 묵묵하게 해 나갑니다. 무려 17년째.
문제는 이 남자의 아내입니다. 큰며느리.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아들과 며느리를 자주 보는 일입니다. 아들은 싫어하는 아내를 달래고 어르고 때론 위협하고 험한 말도 불사하면서 부모님께 데리고 갑니다. 주말을 위해 일주일 내 아내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일이 자주 있지요.
아내는 남편에게 투정이라도 부리지, 남자는 속병이 듭니다. 단단히 듭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원망하게 됩니다. 원망의 대상은 자기 아내입니다. 한편으로 안쓰러운 맘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자기가 지켜야 할 가족보다 때론 부모님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향한 원망의 마음은 점점 커갑니다. 그리고 포기합니다. 서로 편하기 위해. 그리고 여자가 해야 할 일을 혼자 떠맡게 됩니다. 여자 몸은 여자가 손을 대야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예외가 되겠죠. 그래서 목욕시키는 일까지 남자가 떠맡습니다. 그저 아내는 가끔 마지못해 동행하는 것으로, 반찬 몇 가지 만들어 보내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처럼 저 멀리 나 앉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위세 하면서 자기 아이들에게 매달립니다. 전 가끔 궁금합니다. 나중 늙었을 때 자기 아이들에게 과연 뭐라 말할지.
남자는 아들 노릇도 해야 하고 가장 노릇도 해야 하기에 아내에게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않지만, 그마저도 아내는 남편을 뺏긴 서운함을 토로합니다. 남자가 힘든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는,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중간에 끼여 이쪽저쪽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쪽에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동시에 양쪽에서 욕을 먹는 것 말입니다.
이 남자는 거듭되는 술잔에도 더욱 초롱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맘 놓고 취할 수도 없다고요.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까요. 내가 취해 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이런 여자가 있습니다. 의사입니다. 그런데 살림합니다. 자기 아이들 도시락 싸주고 자기 아이 교실에 직업 만든 간식을 갖다 주기도 하고. 물론 살림만 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회 운동까지 겸하기에 바쁩니다. 보통 바쁜 게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빨래는 손빨래한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시어머니에게 더운 진지를 해서 올려드린답니다. 굉장히 까탈스러운 시어머니랍니다. 그래서 가끔은 미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곧 생각을 고쳐먹는 것은 바로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주신 분이기 때문이랍니다. 의사 아내를 둔 남편이 이 정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과연 그 남자는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 궁금하지만, 그것은 둘째치고 이 여자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런 남자, 이런 여자의 삶에서 내 모습을 비춰봅니다. 그리고 내 평생의 바람을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