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와 전주

by 강석우

군대 생활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얀 사과이다. 요즘은 어떤가 모르겠지만 그땐 대구는 곧 사과였다. 밤새 걷다 보면 얼마나 배가 고픈지 그리고 목이 타는지. 선임병이 대열을 잠시 이탈했다 싶더니 당시 갓 전입한 우리 이등병들에게 무엇인가를 하나씩 안겨주었다. 너무 캄캄해서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군복에 쓱쓱 닦고 베어 물었다. 사과였다. 다음 날 야간 행군에 대비해 초저녁에 길을 출발했다. 전날엔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것과는 달리 야산 주변에 끝없이 사과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과는 하얀 사과였다. 농약으로 떡칠이 되어 있던 것이다. 내가 저 사과를 그냥 먹었단 말인가. 원효대사의 해골 물처럼 모르고 먹었을 때는 갈증과 허기짐을 해결해 주던 맛있는 사과였는데 알고 나니 내가 곧 죽을 것만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터미널 주변의 가로수 길도 인상적이었다. 휴가길, 차 시간 기다리면 걷고 또 걷던 그 길. 지금껏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리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가 사는 곳, 전라도와는 끝없는 지역 갈등이 있는 곳 정도로. 이상이 나의 대구에 관한 모든 경험이다.


이번 대구 길에 전혀 경상도스럽지 않은 ‘싸나이’를 만났다. 무례하고 무뚝뚝한 면도 전혀 없을뿐더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지역색을 타파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민족적 소신과 맞물려 전라도 놈을 황공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합류한 ‘아지매’도 마찬가지. 남녀유별이기에 망정이지 그 따뜻한 마음은 껴안아도 괜찮을 만큼 다정했다. 그 자리에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색은 없었다. 인간과 인간이 있었을 뿐.


이 경상도 사람들이 혹 내가 사는 곳을 찾아준다면 난 무엇으로 대접할까. 그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맛집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전주가 자랑하는 한지 공예품, 무엇이 제일 좋을까? 아니다. 나도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대접해야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을 수 있는 정을. 붉은색을 가린 농약을 닦아내면 달고 맛 좋은 사과가 되는 것처럼, 양 지역 사이 농약을 닦아내고 나면 같이 이쪽 한입, 저쪽 한입 사이좋게 베어 물고 씩 웃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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