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방에 들어가면 정신이 없다. 좁은 방에 이것저것 몰아넣은 것이 많기도 하지만 사방에 정리 안 된 것들이 널려있어서다. 아무리 정리하라고 해도 안 된다.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들들이 보는 눈이 있어서 요즘엔 책상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전엔 그렇지 않았다. 이 책 보다가, 저 책 보다가, 메모지, 수첩, 공책들을 여기저기 펼쳐놓아 책상을 한 번 뜨면 다시 앉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였다.
정리 비법은 버리는 것 같다. 버리지 않으면 조금 정리되는 듯하다가도 다시 혼잡한 상태로 돌아간다. 그런데 버릴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구두쇠인 것은 아니다. 물건을 많이 아껴 쓰는 사람도 아니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 생각난다. 주둥이가 겨우 손이 들어갈 만큼 좁은 자루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을 것은 넣어놓고 기다리면 원숭이가 먹으러 온다. 그러나 겨우 손이 들어갈 만한 주둥이이기 때문에 손에 먹을 것을 쥐면 절 때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잡으러 오면 손에 쥔 것을 놓고 도망갈 법도 하건만 욕심 많은 원숭이는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해 버둥거리다가 잡힌다나.
어떻게 보면 세상은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가는 것 같다. 채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고 비워간다는 것은 내 것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스라엘의 사해는 강물이 흘러오기만 하고 흘러 나가는 곳이 없어서 사해(死海)가 되었다고 한다. 조각가는 필요 없는 것들을 잘 버림으로써 작품을 만들고, 미술가는 여백으로 그림을 살려내며, 연설가는 침묵으로 자기 연설을 더 빛내고, 글 쓰는 사람은 행간의 의미로 더 강한 전달을 이뤄내는 듯하다.
버려야 한다. 무엇을 버릴까. 책꽂이에 가득한 필요 없는 책들을 버리면 공간이 조금은 살아날 것 같다. 먹을 것을 줄이면 내 몸매가 조금은 살아날 것 같다. 일을 줄이면 내 시간이 조금은 살아날 것 같다.
그런데 버려? 어떻게 책을 버리고, 어떻게 먹을 것을 버려, 어떻게 해야 할 일을 그만둬. 버려야 하는데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큰맘 먹고 버렸던 것들이 이제 와 후회스럽다. 손을 펴지 못해 잡혀 죽는 원숭이 같으니라고. 흘려보내지 않아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하게 된 사해 같으니라고. 이런 바보 같은. 아니 바보.
온 버림, 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 버리는 것이 문제인데. 오늘도 버리지 못하고 잔뜩 붙잡고 있다. 버리자. 그래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