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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은 것

by 강석우

오래전 이사할 때 이야기다. 사정상 집을 줄여 가는 이사여서 그동안 애지중지하던 것들을 상당수 버려야 할 상황이었다. 아내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아무 정신이 없을 때였기에 마침 방학을 맞은 내가 짐 정리를 했다.

어떻게든 책 읽을 방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독립된 방에 들어가야 할 책을 버리지 못하니 문제가 복잡해졌다. 당연히 내 관점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가끔 대식구가 모일 때 필요하다고 챙겨놓은 커다란 밥솥도, 시집올 때부터 놓을 자리가 없어 상자 안에서 헌 것이 되어버린 그릇들도. 여자는 그릇을 사고 남자는 연장을 산다고 했는데 그릇들이 없어진 것을 본 아내의 서운함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소중한 것이 다른 것 같다. 한동안 우리 집 앞에 생긴 산악자전거 가게 앞에서 넋을 잃고 자전거를 쳐다보곤 했다. 외삼촌이 장사하느라 타고 다니던 일 톤 트럭에 반해 사달라고 조르던 아들이 철이 든 후에 은근히 조르던 새 차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는데, 그만 자전거에 마음을 다 빼앗겨버렸다. 어느 날 아들의 통학용 자전거를 사면서 슬쩍 물었더니 놀랍게도 천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창가에 전시한 황홀하게 보이던 100만 원대 자전거에 혹했었는데, 그만 찬물을 들이켰다.


서울에 다녀올 때 일부러 버스 시간을 늦추 잡고 터미널에 있던 서점을 둘러봤다. 30% 할인하는 서가에 꼭 사고 싶은 책이 있었다. 정가표의 할인 가격을 어림셈하며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그만 포기했다. 속으로 ‘너, 책장에 아직 안 읽은 책 많이 있잖아.’하면서. 그래도 미련이 남아 다른 분야의 책 제목을 훑으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유명 상표의 만년필 진열장이 있었다. ‘아, 좋은 만년필 하나 갖고 싶다.’라고 하면서 살펴보다가 맘에 드는 만년필을 발견했다. 가격표를 봤다. 2백만 원이 넘어갔다. 윽! 다이아몬드 반지를 봐도 무거운 금목걸이를 봐도 돌처럼 보던 내가 그 만년필 앞에서 그만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기껏 이만 원도 안 되는 책도 못 산 주제에. 글씨도 못 쓰는 주제에. 무슨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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