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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인데

by 강석우

처음 주입된 잘못된 지식이 웃지 못할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벌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독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용하지 못하도록 딱 한 번만 쏠 수 있다. 쏘고 나면 죽는다.’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다.

고등학교 다닐 때 변산 해수욕장에서 야영했다. 제대로 서기 어려운 텐트에서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땅벌 한 마리가 보였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무시했다. 등이 따끔했다. 그때 그 벌을 존엄한 인간을, 게다가 조금도 저를 해칠 생각이 없는 인간을 쏜 죄로 사형에 처해야 했는데, 순간 그 생각이 났다. 벌은 한 번 쏘고 나면 죽는다는. 그래서 ‘재수 없네’라는 소리만 내뱉고 다시 좁은 공간에서 몸부림치며 계속 옷을 갈아입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또 쏘였다. 바보같이. “아니 왜 벌이 안 죽었지? 그래, 마지막 안간힘을 쓴 거였구나. 이제 최후의 발악으로 한 번 더 쏘았으니 이제 죽겠구나. 나도 아프지만 참 벌도 불쌍하지. 그거 두 번 쏘고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한다니.” 그날 난 한 마리 벌에 세 번 쏘였다. 등이 벌게진 채 나오며 자연의 법칙을 어긴 발칙한 벌 이야기했더니 “땅벌은 몇 번씩 쏴. 멍청하기는”하고 친구들이 냉소했다.


여름이 싫은 이유는 모기 때문이다. 모기에게 물리고 나서 가려운 것은 정말 못 견디겠다. 그래서 우리 집엔 온갖 살충제는 물론 모기에게 물렸을 때 바르는 약까지 즐비하게 갖춰놓고 있다. 사실 나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물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모기 대비책을 세우는 편이다. 모기보다 우리가 먼저 죽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여름은 모기와의 처절한 전투의 계절이다. 만물의 영장 인간관 미물 모기와의 전쟁은 여름이 가면 끝이다.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조금 봐줬다. 가을까지 돌아다니는 모기가 있길래 “그래, 조금 봐주지 뭐”라고 했다. 날이 갑자기 추워 두꺼운 겨울옷을 입었던 날 밤 모기에게 물렸다. “아니 이것들이 만물의 영장 인간을 조롱하는 것도 부족해 이젠 자연의 법칙까지 어겨? 야, 이놈들아! 이젠 겨울이야! 너희들 세상이 아니야! 꼭꼭 숨어, 나대지 마!”라고 외쳐 봐도.


그러고 보면 참, 인간도 별것 아니다. 힘으로 따져도 날래기로 따져도 인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동물 위에 뛰어난 존재라 자부했지만. 만고불변의 법칙? 그거 무너진 지 오래다. 겨울에 수박 먹기, 여름에 얼음 스케이트 타기,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독수리를 쫓아냈다는 까치, 뱀을 잡아먹는 개구리, 개 젖을 빠는 호랑이, 호랑이와 친구 하는 토끼, 주인 물어 죽이는 개.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파리채 들고 다니거나 모기약 뿌리고 다니다간 나도 언제 역전당해 모기에게 물려 죽을지 모르겠다. 바퀴벌레에 집을 내주고 쫓겨날지 모르겠다. 이젠 아예 내 삶의 한 자리 내주고 같이 살자고 협상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 모기님 제발 겨울에만 이라도 좀 들어가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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