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19살 갓 넘어 올랐던 한라산을 다시 오른다. 1950m 한라산은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다. 숙소에서 일찍 나선다고 서둘렀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은 일정을 시작한 터. 성판악에서 출발하여 진달래밭까지 12:30 안에 도달해야 백록담에 오를 수 있다니 사람들이 일찍 서둔 이유를 알 수 있겠다.
끝없이 이어지는 등산로를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좋은 차를 타고 왔건 그리 비싸지 않은 차를 타고 왔건 여기서부터 걸어야 한다. 아, 등산이 이래서 좋은 것인가 보다. 부자도 걸어야 하고 지체가 높은 사람도 걸어야 하고 심지어 나이 많은 분도 자기의 두 다리로 걸어야 한다. 그리고 땀을 흘려야 한다. 등산 장비의 가격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이 똑같이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평등하다. 오로지 많이 걸었던 사람, 정상에 오르려는 의지 등에 의해서만 구별이 되지 그 외의 것으론 전혀 차별이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는 똑같이 주어진다는 점에서도.
믿을 것은 자기 두 다리뿐, 집에 쌓아둔 재물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높은 사회적 지위도 잊어야 한다. 오직 걷고 또 걸어야 한다.
1100m
힘들지 않은 길이다. 1950이라는 숫자에 겁먹었는데 시작이 평탄하다. 자연히 여러 생각이 머리를 헤집고 들어온다.
여행 자금을 댄 막냇동생, 여행 계획을 짜고 예약하는 등 많은 가족의 차질 없는 여행을 위해 애써 준 매제. 집안의 맏이로서 부끄럽고 민망하다. 아마 막내는 나이 드신 어머니가 추석 음식 장만하는 것이 힘들어 보여 이런 기획을 했을 것이다. 새언니가 어머니 대신 잘해주기를 바랐겠지만 몇 해 명절을 쇠는 동안 내색하지 않더니 이런 피난처를 만들었구나. 아우들아, 미안하다. 명절 연휴 동안 집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객지에서 힘든 삶을 살다가 고향 집에 내려와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슬러 다시 힘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충전해 주는 명절인데 오히려 너희들이 내게 이런 호사를 안겨주니 고맙고 미안하다.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호텔에서 숙박했는데 이른 아침 눈을 떠보니 창밖으로 잔잔한 바다가 펼쳐졌다. 내가 다시 한번 신혼여행을 한다면 꼭 이곳으로 오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더 호사스럽게 그 바다를 보면서 아침 식사를 하다니. 아마 다른 때 같으면 지금쯤 장 보느라 애들 보느라 기진하고 음식 장만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와 아내 눈치를 보느라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신선들을 태우고 노닐던 흰 사슴들이 물을 먹던 곳이라는 백록담을 머리에 얹은 한라산 길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와 더불어 둘이 깔린 숲 속 길을 걷는다.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앞서가는 아들이 돌아서 기다리고 있고, 며느리인 듯한 여자가 뒤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나도 어머니를 모시고 올 것을. 힘들다고 지레 겁먹고 산 아래 관광만 시켜 드리다니. 뒤따라오던 동생이 그 할머니 가족을 지나칠 때, 며느리는 다치시면 큰일 나니까 그만 가시고 여기에서 기다리시라고 하고, 할머니는 계속 올라가고 싶어 하시고 아들은 어쩔 줄 몰라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들은 두 여자 사이에 끼어 있다. 나도 아들이고 게다가 큰아들이다. 한 여자는 어머니이고, 또 한 여자는 아내이다. 한 여자는 내게 생명을 주었고, 한 여자는 그 생명을 이어준다. 한 여자는 내게 모든 것을 주었고, 한 여자는 내 모든 것을 자기에게 주기를 바란다. 한 여자는 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라지만, 한 여자는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 여자는 나 없이는 살기 힘들지만, 한 여자는 아마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 없이 살기 힘든 한 여자는 나를 풀어주려 하고,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여자는 나를 붙잡아 두려 한다. 두 여자가 다 내게 밥상을 차려주지만, 한 여자는 많이 먹기만을 바라고, 한 여자는 먹고 나서 설거지하든지 먹기 전에 밥상을 차리든지 힘을 보태기를 바란다.
1400m
산길이 조금씩 힘겨워진다. 노부부가 쉬고 있다. 남편의 어깨가 처진다. 아내는 옆에서 땀을 닦아준다. 평생 가족의 생계를 이끄느라 지친 모습이 덧붙여진다. 그 힘든 어깨를 토닥이는 아내의 모습이 정겹다. 아마 자식들이 부모님의 여행을 주선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처럼 정말 모처럼 만에, 아니 어쩌면 결혼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왔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땀을 닦아주는 아내의 모습이 오랫동안 잔영으로 남아 숲길에 펼쳐진다.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으로.
힘차게 걷던 아이가 지쳐간다. 먼저 지친 엄마가 아버지를 본다. 아버진 아내도 아이도 어르고 달래 손을 잡아끈다. 아버지의 손엔 가족이 먹을 점심이며 물 그리고 다른 먹을 것들이 들려있다. 그래도 아버진 나머지 가족들을 챙긴다.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의 모습이 바로 저것이겠지.
목이 마르다. 배가 고프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한라산에 오르기 위해선 12시 30분 안에 진달래밭 휴게소에 가야 한다. 거기서 먹고 쉬어야 한다. 여기에서 멈추면 정상에 갈 수 없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이번 여행에 조카가 빠졌다. 추석 연휴 뒤에 바로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대로 편한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는 모습이다. 단 한순간도 느긋하게 살 수 없나 보다. 항상 시간 안에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뒤지고, 뒤지면 살아남을 수 없고 그래서 뛰고, 쉬어도 쉬지 못하고. 길은 끝이 없다. 삶에도 끝이 없다. 삶의 끝은 곧 죽음이기 때문에.
약수터가 있다. 사라 약수. “이 약수 먹고살아라.”하는 사라 약수 같다. 끝없는 길을 가면서도 우리는 곳곳에서 위안을 만난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는 것처럼 등산길엔 약수가 있는 것처럼.
1500m
진달래밭 휴게소. 다행히 처음부터 산길에 오르지 못한 식구들을 제외하고 모두 모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흩어져 제각각으로 왔지만, 도시락을 앞에 두고 한 자리에 모였다. 도시락 배낭을 짊어진 식구, 물 배낭을 짊어진 식구, 과일 담은 배낭을 짊어진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니 풍성한 밥상이 된다. 모두가 꿀맛을 외치며 먹는다. 먹을 것만 생각하며 올라왔다는 동생의 말에 모두가 공감한다. 평상시 밥알을 세던 막냇동생까지 깨끗이 비워낸다.
아! 그렇구나! 우리가 사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구나. 저기까지만 가면 먹을 것이 있어, 마실 수가 있어, 그리고 충만하게 다가오는 그 행복감. 이런 것을 맛볼 수 있다는 희망이 바로 힘든 삶을 참아내게 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지까지 오르면서 온갖 역경에도 참아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지이다. 적어도 저기까지는 가야 한다. ‘이번에 백록담까지 올라가야 한다.’라는 의지가 있기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걸을 수 있던 것이겠지. 또 하나 있다. 앞에 가는 네가 있기에 내가 걸을 수 있고 뒤에 따라오는 네가 있기에 나 또한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 노랫말이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 힘든 돌길을 나 혼자라면 이미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이 산 밖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것.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고 때로는 협력자가 되고 경쟁자가 되어, 앞서가는 자, 뒤에 오는 자가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힘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1600m
어떤 여자가 지리산 무박 종주에 참여하면서 리더에게 “저, 지리산 처음이거든요. 잘 좀 이끌어 주세요.”라고 했다. 10명이 넘는 참가자 중 단 4명이 종주에 성공했는데 그 여자가 1등 했다. 놀라는 주변 사람에게 그 여자의 남편이 “지리산만 처음이지, 다른 산 많이 다녔어요.”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19살 갓 넘었을 때, 이 산에 오르면서 40명분 김밥 배낭을 짊어지고 올랐었는데, 지금은 나 혼자도 버겁다. 동생들에게 미안해 제일 무거운 배낭이라고 골라 짊어졌지만 이미 먹을 것을 거의 다 먹은 후라 무게는 별로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힘겹다.
바람에 꺾였는지 허리가 동강 난 두 그루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힘겨운 삶을 이어오다가 저렇게 꿈을 이루지 못하고 꺾일 때 얼마나 아팠을까. 조그만 상처에도 호들갑을 떨던 내가 그래도 꺾이지 않고 이어가는 삶에 감사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한라산의 나무는 돌 틈을 비집고 힘겹게 살아 돌고 도는 험난한 삶의 증거를 보여준다.
이 높이, 그리고 돌 틈 이것들 속에서 어찌 쭉쭉 뻗은 나무를 기대하랴. 굽어 돌며 돌 틈을 헤집고 나오느라 이리저리 비틀린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이 속에서도 너희들은 그렇게 살아내는데.
1700m
잘생긴 젊은 외국인 둘이 우리말로 “수고하십니다.”라는 말을 연발하며 환한 얼굴로 내려온다. 외국인들을 참 많이 만났다. 지레 겁먹고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했는데 저들은 저렇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넨다. 맞다. 저들 중에는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산을 오를 때 내려오는 사람이 올라오는 사람에게 항상 “수고하십니다. 조금만 더 가세요.”라는 말을 건네는데, 저 산 아래서부터 “얼마나 더 가야 돼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이런 대화를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 거짓말에 속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고. 어떤 아이가 아버지에게 항의한다. “아까 조금만 더 라고 했는데 아직도 아니잖아요.” 아버지가 ‘조금’이라는 말을 설명한다. 그 ‘조금’은 이만큼 ‘조금’이 아니고 많이 ‘조금’이야. 주변 사람들이 웃는다.
11세기 초에 한라산의 화산 폭발이 두 차례나 있었고 그때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제주도 사람들이 한라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것도 바로 이 ‘조금’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괜찮을 거야. 이렇게 참아낸 삶이 3 무 정신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는 것은 자연의 힘 앞에 얄팍한 수는 통하지 않으니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정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로 도와야 한다는 신의, 척박함에도 결국은 한라산은 제주 사람을 먹여 살리니 제 몸 열심히 놀리면 살 수 있다는 근면 정신. 한라산에 오르며 이 정신을 새겨본다.
순간 빨간 열매들이 달린 나무들이 보인다. 배고픈 짐승들을 위한 자연의 선물처럼 보인다.
1800m
시야가 툭 터진다. 저 위로 사람들의 띠가 보인다. 최익현은 “산은 도중에서 포기하면 그로 말미암아 뜻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이므로”라고 했다는데 포기하지 않으니, 사방을 내려볼 수 있는 높이까지 오게 되었다.
시야가 터지고 저 멀리 마을도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초원이 펼쳐진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인간 띠가 정체하여 길게 이어진다. 젊은 남녀 외국인들이 번갈아 사진을 찍는다. 내가 성큼 다가가자 흠칫 놀란다. “내가 두 분 함께 찍어줄게요.”라고 했더니 알아듣지는 못한 것 같지만 금방 이해를 하곤 다정하게 자세를 취한다.
정상을 향해 가쁜 숨 쉬며 걷다가 지쳐 허리 구부리면 보이는 꽃이 있다. 눈을 들면 구름이 놀다 간다. 구름을 향해 난 길이 어서 오라고 유혹하기도 한다. 아래서부터 들려오던 까마귀들의 모습도 보인다.
1900m
마음들이 바빠진다. 아들의 손을 잡고 오르던 아버지도 아내의 손을 잡고 오르던 남편도 애인의 손을 잡고 오던 애인도 이젠 재촉하지 않는다. 나무 계단이 이어지고 여기까지 와서 무릎 꿇는 일은 없을 테니 이젠 힘차게 걷는 일만 남았다.
한라산의 ‘한’은 은하수를 뜻하고, ‘라’는 잡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라산은 너무 높아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에서 한라산이라고 했다는데 그 높이의 감격을 누려야지. 바로 위에서 사람들이 손짓하며 부른다.
1950m
드디어 백록담이다. 흰 사슴이 물을 먹는 곳이라는데 사슴은 없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가는 곳에 동물들은 사라지나 보다. 백두산 호랑이도, 소백산 여우도, 한라산 사슴도. 사라진 뒤 되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그게 영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슴만 없는 게 아니라 사슴이 먹을 물도 말랐다. 전에 왔을 때는 전국적인 가뭄 때문에 말랐다고, 다음에 올 때는 원래 아름다운 백록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말라 있다.
이제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이곳에 서니 모든 것이 다 눈 아래이다. 짧은 시간에 백록담에 구름이 왔다, 머문다,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맨몸을 드러낸다. 다 눈 밑으로 펼쳐지는 광경이다. 그런데 까마귀만 눈 위로 날아간다.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다. 어느 곳으로 갈까. 내 인생도 정상에 올라서면 선택할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선택의 여지없이 이어지는 삶이, 이 길을 보며 감히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