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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와 충만

by 강석우

아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돌아다니길 좋아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면요, 아니 늙어서 기운이 없으면요. 이 자전거를 저에게 주세요. 저도 아들이나 딸 낳으며 태워 주려고요.” 아들도 자기 자전거를 갖고 싶었는데 차마 말을 못 했었나? “그리고요 전 아들이 사달라는 것을 다 사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을 사람이 다 해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불만이 생겨나고 다툼이 생겨나는 것이다.


신앙이 돈독한 분의 블로그에 ‘항상 기뻐하라’가 가능한지 물었다. 곧 답변이 달렸다. “우리 스스로는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주 예수님,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 부활의 영역 안으로 옮겨지더라고요. 그분의 이름은 아시죠? ‘예수~!!’ 그래서 저는 이 이름을 자주 부른답니다. 긴 호흡처럼. 로마서 10:12에서는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말씀하지요. ‘주 예수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당신으로 충만케 하소서!’, ‘주님 당신이 표현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면 기쁨이 회복되곤 하지요.”


이 긴 문장을 두 단어로 단순화해 봤다. ‘부요’와 ‘충만’. ‘부요함’은 내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욕망은 밑이 없기에 채워질 수가 없다. 채워지지 않으면 부요하달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밑 없는 욕망을 내가 무슨 재주로 채울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다. 자기 욕망도 미처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니, 나를 채워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 내가 구하는 부요함은 유한한 사람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요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차원이 아니다.


‘충만함’은 가득 참이다. 부요함이 외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채워짐을 의미한다면 충만함은 내적으로 가득하게 채워짐이다. 무엇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울까. 일단 채우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간절히 열망하면 온통 그것으로 채워지니까. 당구 치는 사람은 누우면 천장에 당구공이 굴러다니고, 바둑에 푹 빠진 사람은 온통 바둑 생각으로 가득 차 눈을 감아도 바둑판이 그려진다고 한다. 그러나 한때는 그것이 전부일 것 같지만 곧 시들해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다. 이내 허전해진 마음을 채워줄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다.


도대체 무엇이 인간의 마음을 가득하게 채워줄 수 있을까. 예수님은 물 뜨러 온 여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겠다고 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를 가득 채워줄 수 있는 분이지 않을까. 그 물을 받아 마시는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건 금방 기쁨으로 회복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부요’와 ‘충만’ 두 단어를 다시 하나로 합쳐보았다. ‘충만함’이다. 충만한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충만한 사람은 항상 기쁘다. 충만한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 그러니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다. 항상 기쁘고 줄기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부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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