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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처럼

by 강석우

아들들이 야채를 싫어합니다. 막내는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 했는데 더 심합니다. 야채를 골라내면서 밥을 먹이다가 혹시라도 작은 것은 그냥 넘기지 않을까? 하고 슬쩍 밥 속에 묻어 넣어도 귀신같이 알아내고 뱉어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만두는 먹습니다. 만두에는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데도요. 정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아마 만두가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낸다기보다는 합쳐진 전혀 다른 맛으로 바뀌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하나하나는 못 먹지만 섞어지면 먹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각자의 개성이 전체와 어우러져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 말입니다. 만두처럼요. 만두소 재료들이 새로운 맛 창조를 위해 각각의 맛을 잃는 것이 되겠군요.


가령 저 같은 경우는 정리를 못 합니다. 주변이 아주 어지럽죠. 어느 날 아이들 방을 보니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방 정리 좀 하라고 했지만, 설득력이 없더군요. 그래서 저부터 정리를 하기 시작했죠. 개개의 모습을 전체를 위해 바꾸는 모습으로서 조금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개개인의 정리 안 되는 성격이 정리된 방이라고 하는 만두의 모습으로 바꾸질 것 같지 않습니까?


큰아들은 갈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손님 밥상을 차릴 때 꼭 갈치를 구워냅니다. 혼자 계신 할머니께서 외로우시다고 아들이 가끔 할머니 집에 갑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큰손자가 기특하고 대견하여 최고의 밥상을 차려내십니다. 우리랑 같이 갈 때는 갈치를 여럿이 나눠 먹으니, 문제가 없었는데 할머니랑 단둘이 밥상을 하게 됐으니 큰일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갈치를 다 먹고 밥도 퍼주시는 대로 두 그릇을 뚝딱 치웠다고 합니다.


어머니 말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너무 예쁘더라. 다음에 또 해줘야지.” 아들 이야기, “아버지, 할머니에게 이야기 좀 해주세요. 갈치 안 좋아한다고요. 할머니 좋아하시라고 다 먹었더니 다음엔 더 많이 주시더라고요.” 개성 강한 아들이 자기 개성을 죽이고 전체 속의 일원으로 자기를 살려내는 모습이 기특했습니다. 이 녀석도 야채는 안 먹지만 만두는 먹었던 아이였지요.


대처 총리의 별명이 ‘철의 여인’이었지요. 막강한 노조를 그렇게 강력하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밀어붙였던 모습과는 달리 남편의 아침 밥상은 직접 차려내었다고 하더군요. 가족이라는 만두를 빚어내기 위해 자기 색을 변화시키는 모습이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만두소 재료는 어우러져 전혀 다른 맛을 낸다고 했지만 하나하나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네요. 모두 속의 하나가 모두를 위해 본래 모습을 변화시킬지언정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하나의 의미나 개성은 살리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군요.


새로운 창조라고나 할까.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다투며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두처럼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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