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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교육

by 강석우

가출을 꿈꾼다. 자살을 꿈꾼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내가 속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하게 벗어나고픈 표현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선 ‘이놈의 집구석’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6살 아들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었다. 15평 아파트에 살 때의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 신혼살림을 차렸던 곳은, 사방을 둘러봐도 논밖에 보이지 않는 농촌이다. 옛날 집들이 다 그랬던 것처럼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농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천장이 낮아 다리를 잘라내고 천장을 뜯어내고서야 겨우 집어넣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시내로 이사 왔지, 아파트였지, 내겐 정말 소중하게 여겨진 집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집을 ‘이놈의 집구석’이라니. 아무리 어리다고는 하지만 우선 아들을 심하게 혼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했겠느냐, 엄마가 집에서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따라서 한 것 아니겠느냐, 어떻게 우리가 함께 가꾸어가야 할 소중한 집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느냐, 다른 사람들이 사는 으리으리하고 넓은 집보다는 우리 식구가 사는 좋은 집이 더 소중하다, 내 집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소중하게 생각하겠느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집밥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라셨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것은 무엇이든 잘 드셨다.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고 배불러서 못 먹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도 자주 하셨다. “세상에 어머니와 아내가 해주는 밥 외엔 다 사료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게 “집밥이 싫어요”라는 말은 충격이었다.


내가 밥상머리 교육을 못 했던 탓이 크다. 그렇다, 나랑 같이 밥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아침엔 아이들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지, 점심은 다 각자 먹지, 저녁마저도 학교에서 늦게 올 때가 많지. 내 잘못이 크다.


그런데 이게 우리 집만의 일이지는 않을 것 아닌가. 큰 일이다. 성경에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고 했다. 이 말을 바꿔 표현하면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기 집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 집 음식을 싫어한다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교육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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