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훈련소에서 이병 계급장을 달고 자대 배치를 육군 제3사관학교로 받았습니다. 약 30명이 학교 본부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장군의 부관이 와서 몇 명을 부르더니 몇 가지 물어본 뒤 그중 한 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장군의 당번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대령의 부관이 와서 또 몇 명을 부른 후 그중 한 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대령 운전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차례차례 불려 나갔습니다.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을 뽑아서 데리고 갔고 그 순서는 이른바 꿀 보직 순서였습니다. 끝까지 부름을 받지 못하고 남은 신병들은 3 사관학교의 격오지 부대로 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듣기론 전방보다 더 혹독한 군 생활하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불림을 받는 것 자체가 상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세리장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지난 채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나사로는 얼굴에 수건이 싸인 채 걸어 나와 돌아다녔습니다.
불림을 받는 것 자체가 변화와 축복의 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름도 있습니다. 바울은 부름의 상을 푯대로 삼고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부름의 상은 영광의 상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말했던 고난으로의 부름이었습니다.
변화든 축복이든 고난이든 이 불림은 소명입니다. 부르심에 순응하여 부르심을 푯대로 삼고 달려간 사람들은 바로 상을 받든, 변화 후 상을 받든, 고난을 겪고 난 후 상을 받든 결국은 불러주시는 것 자체가 바로 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견인불발(堅忍不拔)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뜻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맞아도 끝까지 굳세게 참아내어 목표를 달성한다”입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라고 받아들여, 이 말씀을 푯대로 삼고 감사와 인내로 푯대를 향하여 달려 나가 부르심의 상을 받는 우리 가족이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기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을 평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여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실천하며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공부에서의 상, 일터에서의 상, 건강의 상, 하는 일이 뜻대로 이뤄지는 상을 받아 누리는 우리 가족이 되게 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