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것과 붙잡을 것

by 강석우

바나나 맛 우유 출시 50주년을 기념해서 ‘단지 용기 하나면 돼’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용기(容器)’를 ‘용기(勇氣)’로 바꿔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남의 편만 들어서 남편이라고 한다지요? 아내가 ‘단지 남들 앞에서 내편들 용기만 있으면 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짝사랑하는 청년은 “단지 고백할 용기만 있으면 돼”, 학생은 “단지 등교할 용기만 있으면 돼”, 집순이나 집돌이는 “단지 취직할 용기만 있으면 돼”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표현을 조금 바꿔봤습니다. “단지 그 자리에 있기만 하면 돼”, “단지 건강하기만 하면 돼” “단지 잘되기만을 바랄게” 이렇게 ‘단지’를 붙이고 싶은 내용은 모든 사람에게 굉장히 많이 있을 겁니다. ‘단지’가 오로지 하나를 의미하는데, ‘단지’가 이렇게 많이 나열된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옛날에 광대가 왕 앞에서 공연하다가 실수하여 왕이 가장 아끼는 도자기를 깨뜨렸습니다. 화가 난 왕은 광대를 사형시키라고 명령했습니다. 조금 진정된 후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지만, 왕명을 돌이킬 수는 없어서, 광대에게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고, “네가 어떤 방법으로 죽었으면 좋을지 말하라”라고 했습니다. 광대는 “저는 늙어서 죽겠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어떤 사람은 마지막 소원을 “아름다운 서녘 하늘을 물들이는 일몰을 보고 싶다”라고 했답니다.


요나를 태우고 가던 배가 폭풍을 만나자, 뱃사람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집니다. 아마 그들은 가장 소중한 것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을 겁니다. 끝까지 붙잡고 있을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단지’ ‘오로지’ ‘오직’ 이란 말로 바꿔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끝까지 붙잡을 것은 가족을 위한 기도가 될 것 같습니다. “주님, 저의 마지막 소원은 오로지 우리 아들들에게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소서(렘 29:11),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깃은 황금으로 입혀주소서(시 68:13)”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셨을까요? 이렇게 기도했던 대상은 누구일까요. 아마 먼 선조께서는 일월성신이었겠지만 저로부터 4대조 할아버지께서는 분명하게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를 내가 하고 내가 받고, 후손도 하고 후손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오로지 붙잡아야 할 할아버지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일 겁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라”(계 19:10),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6), “오직 선을 행하라”(히 13:16), “오직 의를 전파하라”(벧후 2:5),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라”(약 5:12) 이런 것을 행한 후에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요 2 1:8).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지 이것, 오로지 이것, 오직 이것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행 1:8) 가능합니다. 이곳 선산 예배에 참석한 우리 가족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선조께서 마지막 남긴 소원, 우리가 마지막 남길 소원, 우리 후손이 받을 마지막 소원의 성취가 우리의 마음에서 확신이 되고 이 마음 오래 지켜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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