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연수에 갔을 때 같은 방에 배정된 선생이 체육 교사였습니다. 그는 “체육 교사로서 최소한 배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학생에 대한 예의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것 없이 이 한 가지만 가지고 교사 생활하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같이 근무했던 체육 교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체육 교사의 기본은 운동장에 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 한 가지는 지키면서 퇴직해야지” 당시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 했습니다. 교사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그깟 것으로 설명하다니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한 가지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교사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도 하나둘 채워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한 가지’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형제들은 공감할 것 같은데, “내 자식들한테 다른 것은 못 해줘도 자식들이 데려오는 친구들 밥은 정성껏 차려주겠다.” 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그 ‘한 가지’도 자녀 사랑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원칙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시작하여 밑으로 뿌리내리고 위로 뻗어 나고, 옆으로 펼쳐져 우리의 삶을 완성해 갑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4~27). 바울은 오로지 한 가지 하나님이 부르신 푯대를 향하여 달렸기 때문에(빌 3:14) 그런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는 한 가지 원칙을 지켜서 애굽의 총리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 한 가지만을 믿고 나아가(삼상 17:45) 거인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음식을 대접하려고 분주했는데, 마리아는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고 주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마르다가 주님께 마리아를 일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바로 세워나갈 ‘한 가지’, 또는 반드시 해놓아야 할 ‘한 가지’를 잘 정리하여 아주 먼 곳으로 이사하기 전 “그 한 가지로 족했다.”라고 되새기거나 그렇게 평가받거나 주님으로부터 그렇게 칭찬받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기도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라고, 노래했던 다윗처럼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실 한 가지 소명을 찾고 이루며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한 가지 더 욕심을 내자면 우리 다음 세대도 주님을 향한 소망과 사랑을 되찾는 일을 우리가 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