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자더라도 기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공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작은 것에서 큰 기쁨을 누리는 모습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배고픈 흥부가 박에서 나온 쌀로 밥을 산더미처럼 해놓고 그 밥 산에 몸을 파묻고 먹어댔다고 한들, 따지고 보면 얼마나 먹었겠습니까. 많아야만, 커야만, 미사여구에서만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세상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에서, 좁은 곳에서, 진심 어린 말 한마디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먼 길을 나서며 자동차 연료를 가득 채운다 해도 한 통 이상을 담을 수 없는 법입니다. 상다리 부러지는 밥상도 결국 한 그릇의 밥이면 배가 부르고, 넓은 세상에서 내가 머물 집 한 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많은 일자리 중에서 내가 일할 곳 한 군데만 있으면 되고, 좁은 집에서도 내가 앉을 책상 하나 있으면 족합니다. 번지르르한 형식에 가득 찬 말의 향연 속에서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해요”라는 말 한마디에 삶의 보람을 느끼고, 아들 녀석의 웃음 한 번에 모든 것이 녹아버리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12:16~21절에 나오는 한 부자는 소출이 풍성하여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가 되자 창고를 더 짓고 쌓아두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려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한여름 땡볕에 흘린 땀이 한가위 때쯤 오곡백과로 맺어집니다. 비록 내 것이 아니더라도 온 들판을 가득 채운 풍요로움을 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풍족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절로 신명이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 모든 곡식이 전부 다 내 것이길 바랐거나, 들판의 곡식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맘속에 불만으로 새겼다면, 풍요로운 한가위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기쁨 넘치는 한가위가 되길 바랍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는 지금쯤이면 한 해 세운 목표가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을 것입니다. 혹시 목표에 부족한 듯해도 괜찮습니다. 부족함이 있을 때 더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 스스로 ‘헛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주변을 한 번만 돌아보면 가득 찬 감사의 조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부리기로 한다면 끝이 있겠습니까. 가진 것에 만족하고, 해온 것에 만족하고, 가질 것에 만족하고, 할 것 있음에 만족하면 더욱 풍요로운 한가위가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만족함이 반드시 큰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에서 작은 부분을 떼어 나누고, 또 힘이 되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넨다면 우리 모두에게 더욱 풍요로운 한가위가 될 것입니다.
자족하는 마음과 나눔, 그리고 따뜻한 만남이 있는 풍성한 한가위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