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을 존중할지라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버지께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아버지 안주머니에 고이 모셔져 있던 만년필이 처음 교복 입고 의젓하게 아버지의 아들로 우뚝 선 내게로 전해진 것이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잘 써라 사범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것이다.” 참고로 아버지께서 사범학교를 졸업하신 해가 1952년이고 내가 중학교 입학한 해는 1971년이다. 그러나 꼼꼼하신 아버지 손에 길들어서인지 천방지축 날뛰는 내 손을 버티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땐 점퍼를 선물 받았다. 아버지께서 결혼하고 처음 사신 것으로 기억한다. 20년도 넘은 낡은 옷을 아들에게 물려준다면서 어머니는 눈 흘기셨지만 잘 입고 다녔다. 몇 년 추운 겨울을 잘 버텨주었지만 그만 옷이 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께 구두를 선물 받았다. 물론 아버지께서 오래 신고 다니셨던 것이다. 참고로 아버지는 발령받고 새 학교에 가실 때 사신 슬리퍼를 5년 임기 마치고 오실 때 거의 새것처럼 다시 가지고 오셨다. 당연히 1년을 못 넘기고 가죽이 찢어졌다. 아버지께서 “네 몸에는 못이 달렸냐?”라고 나무라셨다. 나는 항변했다. “아버지, 그렇게 오래 쓰셨던 것들이니까 당연히 못쓰게 되지요.” “그래도 난 몇십 년을 쓰던 것들인데 어찌 넌 그렇게 금방 못쓰게 만드냐? 아껴 쓸 줄 알아야지.”
낡았다고 금방 버리기 쉽지 않다. 손때 묻은 정든 것들을 어떻게 가격으로만 환산할 수 있겠는가. 오랜 시간 같이하면서 쌓아온 그 흔적들이 바로 나의 역사인 것을. 그것이 바로 현재 나의 모습인 것을. 아버지께선 그렇게 소중하게 사용하시던 것을 명색이 아들이라고 기꺼이 물려주셨다. 받는 나도 아버지 역사와 삶을 담은 소중한 것을 물려받는다는 자랑스러움이 새것을 선물 받는 마음보다 훨씬 더 컸다.
낡은 차를 오래 타고 다녔다. 낡고 오래된 만큼 고쳐야 할 것들이 많이 생긴다. 단골 카센터에 가면 직원이 구박한다. “똥차, 이제 버리세요.” 그래서 한 번은 물었다. “이 카센터의 수입은 새 차에서 나와요? 헌 차에서 나와요?” 90%가량이 헌 차란다. “그러면 헌 차 타고 다니는 사람이 더 귀한 고객 아닌가요?” 오래된 물건을 쓰는 사람에게 그것은 추억이다.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오래된 것을 통해 오늘의 자기 모습들이 이뤄진 것으로까지 여긴다.
마땅히 오래도록 소중하게 사용할지라. 오래된 것을 존중할지라. 새것이 더 좋다고? ‘나’는 지금 헌것인가. 새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