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
학창시절 난 소설을 읽는 걸 매우 좋아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작가가 묘사하는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어 종종 희열을 느끼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하루를 다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소설 읽기 외에도 어렸을 때 난 전반적으로 집중력이 좋은 편이었다.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서 무언가를 읽거나 공부하는 것이 나한테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죽하면 중학교 때 친구가 내게 '넌 왜 하루종일 공부만 해?'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집중력은 곤두박칠치기 시작했고 한곳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졌다. 내 기억으로는 컴퓨터를 자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눈은 글씨에 머무르고 있어도 생각은 다른 곳으로 표류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이 문제는 단순히 의지로 해결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저자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의 도래가 우리의 뇌를 바꾸었다고 말한다. 뇌가 하나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고 짧은 시간에 여러 활동을 하는 것에 편해지도록 적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카톡과 이메일에 반응해야하고, 쉴틈없이 정보를 찾아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다. 짧은 호흡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하루에 처리해야 할 업무의 가짓수는 많고 다양하다. 학생때처럼 한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에 발맞춰서 우리의 뇌는 다양한 형태를 지닌 정보를 속도감 있게 배치하고, 분류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환경은 우리를 무언가에 깊이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정보를 통합하는데 더 어려움을 느끼고 피상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졌다. 긴 이야기를 읽거나 과거나 현안에 대해 성찰하는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니콜라스 카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힘들고 더 관습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문제인 건 우리의 뇌는 한번 어떤 방식에 익숙해지면 쉽게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바쁘게 활동하는 뇌 세포들은 그렇지 않은 뇌세포들을 밀어내고 퇴화시킨다. 조용하고 선형적인 사고를 지원하는 정신적인 기능들을 다시 활성화시키려면 시간이 오래걸린다. 의식적으로 서핑을 적게 하고 이메일을 덜 확인하는 등 엄격한 환경설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예전과 같은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법칙은 뇌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 책은 내 인터넷 사용 습관, 카톡과 이메일 확인 패턴, 휴식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키는 것, 10분에 한번씩 강박적으로 카톡을 확인하는 행동은 모두 내 인지력과 깊이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뇌회로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다른 무엇에도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오랜만에 차분하게 앉아서 독서를 하니 고요함과 평화가 찾아오는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뇌건강을 위해서라도 이런 시간을 더 종종 가져야할 것 같다.
최근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내가 생각하는 책읽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사실 그들을 비난하거나 더 이상 무지하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책을 읽지 않아도 정보는 넘쳐나니까.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책읽기의 옹호자가 되어야 하는지 한가지 이유가 더 생긴 것 같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책을 읽을 이유를 굳이 찾지 못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하는 일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