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주일에 세번씩 집앞 주민센터에서 하는 단전호흡 수업에 다닌다. 명상이 좋다는 말을 듣고 별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수강자들의 대부분은 어르신들이었다. 평균 나이가 60, 혹은 70정도까지 될 것 같은 그 반에서 난 유일하게 '젊은'사람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을 보면서 시작보다는 종점, 활력보다는 쇠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더 많았다. 작은 동작 하나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을 보면 더욱 그랬다. 일주일 전, 승단을 기념하기 위해 다 같이 모인 점심 식사에 참여했다. 식사가 끝나갈때쯤, 한 나이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발언을 요청하셨다. 수업시간에 앞줄에서 유난히 힘없어 보이는 동작으로 운동을 하시던 분이었다. 어떤 진부한 말을 하실까 내심 생각하고 있던 와중, 노인이 입을 연 순간 내 이런 편견어린 생각은 산산조각났다. 그 분은 가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이라고 운을 떼면서 아래 시를 즉석에서 암송하셨다.
김현승(金顯承)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자신은 40편이 넘는 시를 암송하시고 10곡이 넘는 찬송가를 외운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권씩 독서를 하고 꼭 독후감을 쓴다며 공부의 중요성을 설파하시는 모습이라니! 목소리와 눈빛, 말투에서 정신의 날카로움과 지혜가 엿보였다. 늙음이 멋있게 느껴졌고 나도 그분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젊게 산다'라는 말이 칭찬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늙어감은 그 자체로 긍정적으로 생각되는 일이 드물다. 늙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퇴화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짐짝처럼 취급되기도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왜 항상 젊음만을 찬양하지? 우리는 모두 늙음을 피할 수 없는데. 한살 한살 나이가 들수록 이런 사회적 분위기의 부당함이 원망스러워지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늙어감에도 분명 좋은 점이 있다는 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것이 단지 경험, 지혜 등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장점들로만 뭉뚱그려졌을 뿐이다.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늙음이 젊음에 우세하는 면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책이라는 점에서 반가웠다. 소위 '지혜'라고 하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실제로 높아진다는 것을 이 책은 입증하고 있다. 우리의 뇌는 나이가 들수록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구조가 바뀐다. 우리의 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미엘린이라는 물질은 중년에 풍부해져 우리가 인지적으로 최고점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하나 고무적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긍정적이 되고 하루하루를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서 오는 부정적인 신호는 인생을 헤쳐나가기 위해 그 중요성이 덜해지고 감정적, 심리적 평온함이 더 가치있는 것이 된다. 큰 그림을 볼 수 있으니 모든 사소한 일에 신경쓰는 어리석음도 줄어드는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를 보면서 기분이 나쁠 법한 일들, 예를 들면 누가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한다던가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한다던가 하는 걸 왜 그냥 넘기는지 이해하지 못할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덜 중요한 것과 중요한 걸 자연스럽게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시간은 뇌의 편이었다. 지혜로워진다는 것, 성숙해진다는 것, 더 행복해진다는 것. 단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자기위안으로 삼기 위해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들이 아니었다.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무살에 접어들기가 무섭게 한살 한살 나이 드는 것을 한탄하기 시작한다. 나이 먹어감에 대한 자조섞인 농담은 해가 바뀔때 즈음이면 통과의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나이 듦에 관한 시각은 완전히 뒤집어져야 한다. 중년과 늙어감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이 자리잡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