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_"보복살인" 유감

by 권수현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 =앙갚음.”

‘보복(報復)’이라는 단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정의이다. 만나주지 않는다고, 헤어지자고 했다고, 남성이 그 여성이나 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최근 한국에서 매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관련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보복살인’이라는 표현이다. 제목이나 뉴스 내용에 천연덕스럽게 삽입된 이 표현은 부당한 메시지를 유포한다. 마치 피해자가 그럴 만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해를 준 적이 있다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피해자는 범죄자에게 그 어떠한 해를 준 적이 없다. ‘보복살인’이라는 단어는 만나주지 않은 것, 헤어지자고 한 것, 자신이 뜻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은 것을 ‘해를 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범죄자의 관점이다. '보복살인'이라는 단어는 뉴스의 독자/시청자로 하여금 범죄자에게 공감하게 하고, 범죄자를 동정하게 만들고, 나아가 오히려 범죄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보복살인’이라는 표현은 피해자와 그 가족뿐만 아니라, 언제든 그런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시민을 욕보이는 것이다.

‘보복살인’이라는 표현은 언론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일견 범죄의 중대함을 알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사건을 바라보는 핵심 프레임은 ‘범죄자 관점’을 내재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언론이 모든 강력 범죄에 대해서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유독 젠더 폭력 범죄, 즉 한남 범죄 사건에서 이런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되 제목이나 내용에서 은근슬쩍 범죄자를 두둔하는 프레임을 삽입하여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 범죄자 관점의 기사 생산의 전형적 양상 중 하나다.

왜 이러한 정의롭지 못한 보도 관행이 반복되는가. 해당 언론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그냥 습관이다. 뿌리 깊게 내면화되어 각인된 습관.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언론이 제대로 공익적 기능을 할 수 있다. 그 방법은 언론의 성주류화, 특히 의사 결정 집단의 성비 균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법 촬영 범죄자의 관점에서 여성을 젖소에 비유하는 광고를 내보낸 서울 우유. 이런 만행은 서울우유의 주요 임원진이 모두 남자로 채워져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보복살인"이라는 표현을 담아 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관행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21년 12월 12일 작성


※ 관련 인터뷰 기사 :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238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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