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 콘텐츠에서 ‘서사’의 역할

04_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by 권수현

1. 포르노그래피에서 ‘서사’의 역할


포르노그래피의 목적은 시청자의 가학적 성적 쾌락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콘텐츠 소비자를 성적으로 제대로 흥분시켜 가학적 쾌락의 만족감을 주면 된다. 보는 사람이 가학적인 성 착취 장면을 즐기게 만들고, 그 맛에 그런 콘텐츠를 계속 찾게 만들면 된다.


포르노그래피 제작자는 서사의 완성도나 설득력에는 공을 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포르노그래피의 서사는 한마디로 성의가 없다. 개연성 없는 캐릭터, 엉성하고, 어설픈 내용으로 대충 짜 맞출 뿐이다. 플롯의 역할은 그 쾌락을 고조시키는 수단 혹은 배경 정도로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2. 혐오에 동의하는 주체 만들기


넷플릭스 콘텐츠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서사의 역할은 콘텐츠 소비자를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폭력의 행위자에게 동일시하거나, 폭력 자체에 대해 동의하게 만들거나, 폭력 장면에서 쾌감을 맛보게 하는 데 맞춰져 있다. 그 방식이 몹시 노골적이고, 세련되지 못하고, 억지스럽다. 왜냐하면 이 콘텐츠의 제작자에게 ‘서사’는 시청자를 ‘폭력을 즐기는 주체’로 만드는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콘텐츠는 폭력의 향연이라는 목적을 위해 한국인에게 익숙한 기술과 코드를 동원한다. 내가 이 콘텐츠를 ‘한남 콘텐츠’로 명명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 문법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콘텐츠에는 성차별적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 코드가 망라되어 있다.


1) 여성 혐오에 대한 동의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좀비를 피해 은신처에 숨어 있는 상황에서, 동료를 위험에 빠뜨리고, 집단 내 갈등/분란을 유발하는 자는 모두 여자다. 이들이 일으키는 분란에는 대체 왜 저러는지에 대한 ‘맥락/배경’이 부여되지 않는다. 그저 ‘매를 부르는’ 캐릭터일 뿐이다.


캐릭터 설정의 지향점은 이렇다. 시청자가 이 캐릭터에게 느끼는 짜증과 분노는 점점 회를 거듭할수록 고조되다가, 이 캐릭터를 싫어하게 된다. 이 캐릭터가 극 중 악당에 의해 처형당하듯이 공격당할 때 후련함을 맛보게 되는, 그런 식의 플롯이다. 즉 이 캐릭터가 폭력을 당하는 국면에서 시청자는 그 폭력 행위자에게 동일시하여 그 행위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즉 시청자는 그런 방식으로 분란 유발자 여성 캐릭터에 대한 혐오 폭력에 동의하게 된다.


2) 여성 피해자에 대한 탈-동일시


이 콘텐츠는 시청자가 여성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설정한다. 이 콘텐츠는 같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괴롭힘과 고문, 불법 촬영 및 유포 협박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피해 여학생이 재난 속에서 위악적 인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가 그 인물에게 가졌을 연민이나 공감을 거두게 만든다.


3) 아싸-남성 캐릭터 혐오에 대한 동의


“너 혹시 쟤 좋아하냐?”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남성이 문제를 제기하면 흔히 듣는 말이다. 성희롱 행위자와 동조자는 그 행동이 잘못임을 알려주는 사람의 마음을 심문 또는 폭로함으로써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 첫째, 그 사람의 마음을 구경거리로 전시하고, 자율성을 박탈하는 것. 둘째, 성희롱을 윤리와 분리하여, 문제의식을 와해/무력화하고, 목소리/언어를 빼앗는 것. 성희롱 장면이 불쾌한 이유가 피해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하면, 그 행위에서 누구나 ‘옳지 않음’을 발견할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 즉, 문제의 행동에 대한 보편적 판단의 기회를 소거하는 것이다.


이 콘텐츠에는 집단적 괴롭힘과 불법 촬영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가해자는 동조하지 않는 남학생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 혹시 쟤 좋아하냐?’고.


같은 학교 동기 여학생을 괴롭히고, 강제로 촬영하는 행동에 가담하지 않은 남학생은 그 여학생을 좋아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한남 제작자의 상상력에는 ‘여성 피해자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남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문제는 이 콘텐츠가 그 남학생을 ‘아싸/찌질이’로 설정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가 찌질한 캐릭터에 동일시하기 어렵다. 결국 그렇게 극 중 가해자들은 윤리적 시선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좀비 장르에서는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가상의 재난 상황을 통해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그러나 좀비 드라마 중에는 시청자가 선한 의지를 가진 인물에 동일시하도록 설계된 문법 구조를 유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이 콘텐츠는 외견상 선악 구분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익숙한 혐오 코드와 기술을 활용하여 시청자를 폭력과 혐오의 향연으로 끌어들인다.


3. ‘N번방’으로의 초대


통상 성범죄에서 청소년과 성인 가해자의 행동 패턴은 다른 경향성을 띤다. 청소년 성범죄는 집단적 공모로 발생하는 한편, 성인 남성에 의한 성범죄는 단독으로 발생한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성범죄 양상이다. 그런데,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는 이 보편적 경향에서 벗어난다. 디지털 성범죄는 청소년과 성인 구분 없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오가며, 조직적, 집단적 공모를 통해 이뤄지며, 그러한 프레임 속에서 점점 더 잔혹해지는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콘텐츠가 대단히 위험한 이유는,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재난 상황을 이용하여 시청자가 폭력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즐기게 만드는 방식으로 서사가 설계되어 있다는 점, 무엇보다 전 세계적 파급력을 가진 플랫폼, 넷플릭스의 콘텐츠라는 점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허브 국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 콘텐츠가 흥행한다면, 전 세계에 폭력과 혐오의 정상성을 유포하는 것이다. 혐오 폭력에서 짜릿한 쾌감을 맛본 시청자가 많아지면, 이런 콘텐츠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잔혹해질 것이다. 그런 세상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만큼이나 끔찍한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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