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그림책 속 '남성적 응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페르 홀름 크누센, 담푸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의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
1. 얼굴 없는 여성, 스스로 태어나는 아기
2020년 한 야당 의원의 공격으로 '논란'이 되어 회수된 나다움 책 중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의 이미지 컷에는 인간의 몸과 인격을 타자화하는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가장 문제적 이미지는 여성의 출산 장면을 그린 삽화 2개.
삽화 1. 여성은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고, 양옆에 남편과 의사가 여성의 몸을 응시하는 장면이다. 독자의 눈이 카메라라고 할 때, 다리를 벌린 여성의 질이 화면의 정중앙에 배치되어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출산하고 있는 여성은 '얼굴없는 생식기'로 그려져 있다.
삽화2. 같은 그림에서 벌린 다리 사이로 아기가 서서히 여성의 질에서 빠져나오는 장면. 아이는 씩 웃고 있다. 그림에서 아기는 여성의 질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에서 여성의 몸은 철저히 사물화되어 있다. 출산 과정에서 겪는 인간으로서 여성의 감정, 몸의 일부가 찢어지면서 아기가 나올 때의 고통, 오랫동안 품고 있던 생명이 밖으로 나올 때 겪는 생생한 감정 등 이런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림에서 여성은 인간이라기보다는 그저 아기를 담았던 그릇처럼 보일 뿐이고, 오히려 '스스로 태어나는' 아기가 생명체로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에서 '여성=질'로 축소된다. 여성의 몸을 응시하며 웃고 있는 남자 의사와 남편은 '표정'이 있지만, 그저 '질'에 불과한 여성은 '얼굴'이 없다.
2. 남성적 응시
여성을 특정 신체 부위로 환원하는 것(가슴, 배, 다리, 엉덩이, 질 등), 여성을 인격과 감정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사물화 하는 것, 페미니즘 문화 비평에서는 이를 '남성적 시선 Male Gaze'이라고 한다. 좋은 의도와 내용을 담은 성평등 콘텐츠의 상당수가 이러한 '남성적 시선'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서사와 무관하게 혹은 그 메시지와 정반대로 여성의 몸에 대한 콘텐츠의 시선은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현상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여성의 몸을 이런 식으로 사물화 하거나 조각내서 바라보는 것에 그만큼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뼈에 새겨진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에서 이 콘텐츠는 포르노그라피와 다르지 않다. 여성을 신체의 일부로 환원하여, 그것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타인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게 하거나, 아기 낳는 도구로 인식하게 하는 것, 이 점에서 포르노그라피와 이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동일한 시선의 문법을 가지고 있다.
무려 50년 전에 나온 책이다. 정말 좋은 책이 많은데, 왜, 구태여 나다움 시리즈에 이 책을 선정한 것인가? 이 책이 선정된 것도, 무식하고 몰상식한 야당 의원이 만들어낸 '음란' 이슈를 이유로 이 책이 회수된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무려 2020년 한국에서 말이다.
- 2020년 9월 1일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일부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