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지성"이라는 말에 담긴 가치

미디어 비평

by 권수현

뉴스 및 방송의 신간 소개, 유명인 인터뷰의 제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디 어디 "최고 지성"이라는 말, 미디어에서 너무 자주 등장하는 표현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최고 지성"이라는 말은 지식의 권위를 특권층이 독점하고 있을 때, 진리의 언어가 성별-나이-계급-인종-장애 등의 차별 범주에서 '기득권'에 속하는 사람들의 배타적 소유물이었을 때, 그들만의 리그/지식의 계급 사회에서 멤버십을 가진 자 중 누가 더 정답에 근접했는가를 겨루는 것이 당연해 보였을 때, 그런 시절에나 사용될 법한 표현이다.


"최고 지성"이라는 말은 우리의 시선이 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이나 캐나다, 미국 등 북미 등 소위 Global North에 향하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이 미국과 유럽의 시선(American Gaze, European Gaze)에 압도되어 있을 때, 뼛속 깊이 내면화된 그 시선의 승인과 인정을 열망할 때, 그럴 때나 사용될 법한 표현이다.


진리의 언어에는 '최고'가 없다. 어떤 장소에서(그곳이 유럽이건, 한국이건) 정전에 반열에 오른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지식은 앞선 시대 혹은 동시대 수많은 동료 지식인들의 지식에 대한 인용의 실천(citational practice)에 의해/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누군가의 '독창적' 지식이란, 그러한 인용의 실천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지식인의 세계에는 1등이 없다. 지식의 탄생과 출현은 지식인 집단의 동료 평가(peer review)를 통해서, 또는 독자의 지식 소비와 향유를 통해서 이뤄지는 지속적인 과정일 뿐이다.


어떤 언론에서 자신을 "최고 지성"이라고 표현했을 때, 당사자 지식인이 그런 표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자신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 그 시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은, 스스로를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상호의존성, 즉 지금의 자신이 출현하게 된 지식 생산 과정을 망각하게 된다. 또한, 스스로 신이 나 된 듯한 자기 효능감에 취해, 스스로 어떤 말을 해도 된다고 여기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식으로 망가진다. 권력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해롭게 작동한다. 그래서 권력이 무서운 것이다.


"최고 지성"이라는 말에는 강자의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그 말에는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의 가치가 전제되어 있다. 불평등한 세상을 바로잡기 보다는, 불평등한 세상에서 강자의 리그에 포함되고자 하는 열망, 불평등한 세상을 주도하는 빅 브라더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꿈틀댄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내가 떠난 후에 이 세상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최고 지성"이라는 말, 그래서 난 이 표현이 싫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교육 그림책 속 '남성적 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