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가?

by 권수현

안치환이 최근 발표한 신곡,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에 대한 비판 여론은 주로 '기득권 꼰대 586' 비판 담론으로 모아지는 듯하다. 그중 인상적인 부분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안치환의 "변절"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노래가 예전에 괜찮았던 사람이 지금은 맛이 가서 나오게 된 것이 아니라, 핵심 세계관의 연속선으로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요약하자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안치환이 안치환 한 것'이다.


나는 "꽃보다 아름다워", 이 노래를 여기저기서 듣고 살았던 세대다. 운동권 출신이건 아니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익숙한 노래다.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제목과 가사에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았고, 이 노래가 왜 저항 정신을 담은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가? 어떻게 사람이 풀이나, 나무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가? 어떻게 사람이 개, 돼지, 닭, 고릴라, 코끼리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가?


어떻게 "슬픔에 굴하지 않고", "모든 외로움 이겨낸" 사랑 만이 "참사랑"일 수 있는가?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슬픔에 무너지고, 가라앉고, 비켜서고, 도망치면 안 되나? 그런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가? 왜 이겨낸 사랑만이 "참사랑"인가? 슬픔과 외로움에 무너지고, 비켜선 사람의 사랑은 "참사랑"이 아닌가?


나는 이 노랫말에 흐르는 강자의 서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이 제목에 담긴 인간중심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름다움의 미학과 존엄성의 가치를 비교를 통해서 평가하는 시선은, 인종주의의 그것과 닮은꼴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깎아내리기 위해 그 사람의 외모가 흑인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꼴을 보고, 변절이라고 하지 않고, "꽃보다 아름다워"의 '안치환'이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의 안치환 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저항'이란 강자의 윤리, 강자의 세계관 위에 선 자들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혁명이 그렇게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되었다. 이제는 인간중심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자들이 만들어가는 저항의 가치를 소중히 할 때가 되었다. 지구 멸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정말,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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