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그대 가슴에 (1959, Imitation of Life)
우연히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다. 어릴 적 본 영화인데도 줄거리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표정, 인상적인 장면에 대한 느낌까지 세세히 기억나는 영화였다. (기억력의 비결은 어려서부터 최루성 멜로물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에겐 바로 이 영화가 ‘딱 내 스타일’이었다는 점!)
어린 나이에도 영화를 보면서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늘 백인이 되고 싶어 했던 사라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었다. 백인처럼 보이는 사라의 외모는 그녀에게 백인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한 동시에 흑인의 피가 흐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과 혐오로 인해 스스로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아이는 백인 모녀 로라, 수지와 함께 살면서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흑인 엄마 애니 보다는 아름다운 배우 로라가 자신의 ‘진짜’ 엄마이길 바랬다. 아이는 모든 곳에서 백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백인의 외모를 지닌 그녀에게 ‘백인으로서의 삶’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가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직면케 했다.
모든 학생과 교사로부터 백인으로 알려졌던 학교에 흑인 엄마 애니가 도시락을 싸들고 온 날 그녀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녀는 더 이상 그 학교를 다닐 수가 없게 된다. 백인 남자친구가 사라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 그녀는 남자친구로부터 참을 수 없는 모욕적인 욕을 듣고 흠씬 두들겨 맞는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자신을 낳아준 흑인 엄마 애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흑인의 피를 물려준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했던 자기 분열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아무도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린다. ‘백인’으로 살기 위해서.
사라가 선택한 백인으로서의 삶 역시 그녀에게 행복을 안겨다 주지 않았다. 엄마 애니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딸 사라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찾아간 날, 모녀가 마지막으로 포옹하며 나누던 대화는 사랑하면서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고통스런 딜레마와 그 비극적 결말을 잘 보여준다.
흑인임에 늘 당당했던 애니와 자신이 흑인임을 부정했던 사라, 두 모녀에게 발생하는 끝없는 불협화음과 비극적 결말인 인종 차별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제대로 몰랐던 내게 차별의 결과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했다.
경계선에서 보면 이쪽과 저쪽이 모두 다 보이지만, 이쪽과 저쪽 어느 쪽에도 소속될 수 없는 사람들은 떠돌이 신세가 된다. 영화는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흑인과 백인의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혼혈 인간들의 현실과 고단한 삶을 매우 호소력 있게 보여주었다. 정체성의 혼란과 분열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이것이 50여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내게 보여준 미덕이다.
< 인상적인 장면 몇 개 >
장면 1. 수지와 사라가 누가 백인 인형을 가질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장면. 사라는 흑인 인형을 부엌 바닥에 내동댕이 친다.
장면 2. 엄마가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자신이 흑인임이 밝혀진 날, 비를 맞으며 학교를 뛰쳐나와 다시는 학교에 나가지 않겠다고 울부짖는 사라를 설득하는 애니. 울부짖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 내 가슴도 미어졌었다.
2009년 1월 9일에 씀.
영화 정보 :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query=Imitation+of+Life&ie=utf8&sm=whl_n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