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고통과 행복한 죽음

- 슬픔은 그대 가슴에 (Imitation of Life, 1959)

by 권수현

언제부터인지 나의 가장 큰 소원은 행복한 죽음이었다. 내 삶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내 소원이 되었던 건 아마도 국민학교 시절 처음 본 <슬픔은 그대 가슴에(원제: Imitaion of Life)>라는 제목의 영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압권인 마지막 장면, 흑인 아줌마 애니의 장례식 장면은 ‘행복한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나는 심판의 날 악한 자가 아닌 선한 자로 서고 싶어요. 그리고 내 장례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요. 특히, 4마리의 백마, 그리고 고적대, 슬프지 않은 음악, 자랑스러운 그리고 하늘로 향하는...내가 자랑스럽게 가는...쉬고 싶어요. 무척 피곤해요.


‘심판의 날, 악한 자가 아닌 선한 자로 서고 싶다’는 그녀의 마지막 말은 내 심장에 부드럽고도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 울림이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 남아있다. 흑인으로서, 그리고 흑백 혼혈의 딸을 둔 엄마로서, 평생을 지독히도 고통 속에서 살았을 터인데, 그래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증오와 미움, 원망의 감정을 품었을 법한데, 흑인 아줌마 애니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미워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릴 땐 이 영화를 백인 여성 로라(라나 터너 분)에게 동일시하면서 보았다. 연극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성공을 거듭하고, 잘생긴데다가 나이도 어리고 게다가 인간성마저 훌륭한 연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름다운 백인 여인 로라의 삶은 동경의 대상이 될 법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이 영화를 다시 보니, 흑인 아줌마 애니가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였다. 늘 무대 뒤에서 누군가를 보살피고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주었던 그녀가, 평생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던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로라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원을 말한다. ‘화려하고 성대한 장례식을 해 달라’고. 이 장면에서 흑인 애니가 영화 속 등장인물들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존재로 보였다.


죽음의 순간에 가난하던 시절 기꺼이 50달러의 우윳값 외상을 눈감아주고 어렵고 고단하던 순간에 따뜻한 마음을 보냈던 우유배달원을 잊지 않았던 애니는 내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Trouble of the world ([슬픔은 그대 가슴에] 중에서, 마할리아 잭슨)

Soon we'll be done
Trouble of the world
Trouble of the world
Trouble of the world

Soon we'll be done
Trouble of the world
Going home to live with God

No more Weeping on Wailing
No more Weeping on Wailing
No more Weeping on Wailing
Going home to live with my Lord

Soon we'll be done
Trouble of the world
Trouble of the world
Trouble, Lord of this world

Soon we'll be done
Trouble of the world
Going home to live with my Lord

I want to see my mother
I want to see my mother
Going home to see my mother
Going home to live with mother

Soon we will be done
Trouble of the world
Trouble of the world
Trouble of this world, Lord
I soon will be done
with the trouble of the world
I am gong home to live with God


불교에서 인생은 苦海라고 한다. 고통으로 가득한 인간의 삶에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건 이 고통의 바다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희망이 아닐까. 죽음 이후의 세상은 눈물도 통곡도 없는 곳이라는 믿음.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마감할 때 어쩌면 이러한 믿음이야말로 죽음을 구원이자 안식처로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 행복한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뜻하는 건 아닐까.


흑인 주인공 애니에게서 고통의 미학을 발견한다. 마할리아 잭슨이 비통한 표정으로 온 몸으로 부르는 노래 Trouble of the world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 진다. 일생을 무대 뒤에서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만을 해온 애니, 항상 겸손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애니, 가난하고 마음 아픈 자를 위해 소박한 일상을 살았던 애니가, 죽음 앞에서 했던 말, 이런 장면들이 내게 지금도 말을 걸어온다.


2006년 1월 9일에 씀.


영화 정보 :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6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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