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마법이 필요해

아르헨티나 할머니(アルゼンチンババア, 2007)

by 권수현

고교생 미츠코의 아버지 사토루는 아내를 잃고 유령처럼 넋이 나가버렸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백발의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숲 속 어딘가 낡은 성처럼 보이는 3층짜리 건물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유리. 아버지는 ‘아르헨티나 할머니’라 불리는 그녀와 함께 비현실적인 그녀의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가 다시 현실 세계에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 공간이 갖고 있는 마법 같은 힘 때문이었다. 그 힘은 “모든 걸 치유해주는 사랑” 이전에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인 듯하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유리는 사토루에게 “힘내!”, “이겨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자신의 아픔과 두려움을 스스로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시간을 갖게 해 줄 뿐. 그녀는 그런 그를 인정해주고, 기다려줄 뿐이다.

어른은 힘든 일이 생겨도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특히 부모라는 자리에 있을 때는. 상처와 분노는 그런 기대를 먹고 자라난다.

한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애틋했던 부부 사이였는데, 엄마가 죽고 난 뒤 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아빠가 재혼을 했다. 20대 초반의 딸은 버려진 기분, 보금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엄마의 자리를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에게 내준 아빠를 용서할 수 없어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좀 더 살아낸 뒤, 그 친구는 그런 마음을 서서히 접었다.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상처받고, 두려워한다는 걸, 그래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물론 현실은 무너져도 된다고 허락해주지 않지만...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만큼이나 마법을 필요로 한다.


2011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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