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년 부부의 위기

사랑하는 시바여, 돌아오라 (1952)

by 권수현

버트 랭커스터, 셜리 부스가 주연한 1952년 영화. 황혼을 바라보는 중년 부부가 주인공이다. 중산층 주택가에서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부부의 결혼은 아내 Lola가 임신하는 바람에 ‘코가 꿰어’ 결혼한 ‘shot gun’ marriage. 그러나 아내는 결국 임신한 아이를 유산했고, 남편은 여차 저차 해서 의대를 중퇴하고 척추교정사 일을 하고 있다.

남편 Doc은 늦잠을 자고 깨어나 하루 종일 부스스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아내에게 늘 자상하고 친절하다. 항상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과 말투를 유지하는 신사인 그는 1년 전부터 알코올 중독자 갱생 모임(Alcoholics Anonymous , AA)에도 성실하게 참석하고 있다.


반면, 아내 Lola는 몸매도 옷차림도 항상 흐트러져있다. 모든 사람에게 자상하고 상냥하지만, 어쩐지 아무도 그녀를 쳐다봐주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남편 Doc은 아내에게 항상 정중하고 친절하지만, 정작 마음으로 그녀의 눈을 쳐다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녀는 늘 모든 사람에게 어딘가 필사적인(desperate) 태도로 대하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절절한 외로움과 고독이 느껴진다. 부부는 같이 밥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지만,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본다.

아내는 남편을 'Doc', 'Daddy'라고 부른다. 의사가 되지 못한 남편의 이름이 하필 Doc이다. 남편을 Daddy라고 부를 때, 그녀가 잃어버린 강아지 쉬바(Sheba)를 단념하지 못했다는 점이 상기된다. 남편 역시 아내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Lola, 그 이름은 그녀에게도 남편에게도 낯선 이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학생 Marie가 이 집에 세를 들면서 지루하면서도 어딘가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들의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다. 활기차고, 화사하고, 매력적인 Marie에게 부부는 각자 다른 이유로 호감을 느낀다. DVD의 재킷에는 남편 Doc이 Marie에게 성적인 열정을 느낀다고 적혀있는데, 아마도 IMDB의 스토리라인을 차용한 듯. 그러나, 영화를 보면 Doc이 Marie에게 갖는 호감은 단순한 성적 매력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Marie는 부부의 젊은 시절, 서로를 잘 알기도 전에 아이가 들어선 그때 그 나이이다.


Doc은 Marie가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다 인생을 망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Marie의 등장은 부부의 삶에 내재된 불안과 열정을 자극하고, 이는 부부에게 큰 위기를 불러온다.

부부는 각자 Marie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백일몽을 더욱 강렬하게 꾸게 되고, 그것은 이들의 일상에 잠깐 활기를 가져다준다. Doc은 젊고 화사하고 매력적인 아내를 둔 유능하고 부유한 의사의 삶을, Lola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녀를 보살피는 유복한 가정의 행복한 주부의 삶을, 그렇게 간절히 갖고 싶었던 그들의 청춘, 잃어버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꿈. 그 꿈이 강해질수록 현실과의 간극은 더 예민해지면서, 부부의 긴장은 극적으로 표출된다. Marie를 통해 부부가 자신의 삶이 어긋나던 그 지점과 직면하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회한과 원망을 거두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결말. 마지막 장면에서는 안도감과 더불어 쓸쓸함이 더 큰 여운으로 남는다.

늘 섹시한 남성성의 페르소나였던 버트 랭커스터가 이런 역을 맡은 영화는 처음 본다. 그의 존재감은 신체적 조건뿐만 아니라 중견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내공에서 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 역을 맡은 셜리 부스의 연기가 압권이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1930-1960년대 미국 영화를 꽤 많이 보았다고 자부하지만, 처음 보는 배우다. 찾아보니 주로 TV에 많이 출연했고,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 배우였던 모양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 영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분명 몰입하게 될 텍스트이다.

영화는 대전 후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던 19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성들이 전쟁에 동원된 사이 산업 부문에서 그 일자리를 메웠던 여성들이 전후 남성들의 복귀와 더불어 해고되던 때였다. 또한 이와 더불어 유능한 남편-반듯한 전업주부-사랑스러운 자녀들로 구성된 중산층의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 즉 가정성(domisticity)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사회를 지배했다.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중산층 가정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다룬 영화들 중에는 이렇게 명작이 많다. 반세기 전 다른 나라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현실감이 있는 것인가.


2011년 2월 12일


※ 영화 정보 : http://www.imdb.com/title/tt004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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