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한가운데(The Color Of Lies, Au Coeur Du Mensonge, 1999)
영어 제목은 “거짓말의 빛깔”이지만, 원제인 "거짓말의 한가운데"가 제목으로 적절하다. 가끔 영화에서 어디서 본듯한 느낌, 즉 데자뷔를 경험할 때가 있다. 호기심에 이끌려 이리저리 자료를 뒤지다 보면, “아하! 역시 그랬구나!” 싶을 때가 많다. 내 경우엔 동시대, 특히 동시대의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혹은 동일한 감독의 영화에서 데자뷔를 경험했다. 이 영화는 중반에 대학 때 보았던 “도살자(The Butcher, Le Boucher, 1969)”가 딱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알고 보니 끌로드 샤브롤 감독의 영화였어!
한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누가 진범인가를 둘러싸고 마을 사람들 간에 서로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시작된다는 것, 그러면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두 영화의 공통점은 하나의 예외적 사건이 구조화된 일상적 거짓과 위선 속에서 발생하면서, 그 거짓의 에너지가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오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 대학 때 일부러 프랑스 문화원에 찾아가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 봤던 <도살자>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서 그때도 다소 ‘고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거짓과 폭력의 관계를 조명한 내러티브가 꽤나 인상적이었고, 특히 거짓이 가져오는 파괴적 에너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주로 이 감독이 취하는 방식은 그 압력의 취약한 고리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폭력의 당사자가 되는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강렬해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도살자>와 <거짓말의 한가운데>는 1960년대 말, 1990년대 말이라는 30년의 시간의 간격을 두고 있지만, 이야기 구조가 유사하다.
사족 1. 스컬리를 닮은 여배우가 형사 반장으로 나온다. 목소리는 영 아님). 패배적이고 음울한 분위기의 미술 선생님 역을 맡은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이었다. 자끄 갱블랭, 처음 보는 배우인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 살인범으로 의심받는 다소 복잡하고 여린 성격의 미술가 역에 잘 어울렸다.
사족 2. 프랑스엔 애연가들이 많아 그런지 담배 피우는 장면이 유독 많다. 그런데 이걸 꼭 모자이크 처리해야 하는 거냐? 꼭 그래야 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