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혐 영화인가 다큐 영화인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

by 권수현

※ 스포일러 있음


중세 유럽에서 강간은 일종의 '재물손괴죄', 즉 타인의 재물에 대해 그 효용을 해치는 것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범죄다. 강간은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의 재물을 망가뜨린 범죄로서, 강간범은 피해 여성의 소유자(남편, 아버지, 아들 등)에게 피해를 입힌 것으로 간주된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법적으로 인격이 없는 물건이므로, 이때 '피해'란 한 남성이 다른 남성에 대한 보상과 연결된 개념이다. 그것이 재물의 효용이건, 인격의 효용, 즉 명예이건.


14세기 유럽에서 유서 깊은 가문의 기사의 아내를 남편 친구가 강간했다. 피해자가 이를 세상에 알리면서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두고 왕과 귀족, 백성들 앞에서 남편과 남편 친구 간의 결투가 벌어졌다.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진실을 가져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은 14세기 중세 프랑스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는 남편, 남편 친구, 그리고 아내 등 3명의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사건을 여러 사람의 관점에서 조명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형식은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의 그것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3명의 관점에서 구성된 3편 모두 사건 발생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 등장인물에 대한 감독의 해석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이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면,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아름답고 정숙한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정의롭고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인 기사 남편, 혹은 강간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남편의 친구. 그런데, 영화를 보면 트레일러가 떡밥으로 던진 등장인물들에 대한 낭만적 상상이 완전히 깨진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영화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 중 바람직한 인품의 소유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남편과 남편 친구의 상전인 영주(벤 애플렉)는 백성과 신하의 고혈을 빨아 재산을 축적하고, 폭력으로 탈취한 남의 돈으로 변태 성행위 파티를 즐기는 양아치다.


남편(맷 데이먼)은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의 후손으로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자신의 영주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억울함이 쌓인 인물이다. '가오'가 중요한 그는 자신의 자격지심을 부인을 포함한 '아랫사람'에게 풀어놓는 위선적 인물로 그려진다.


한편, 남편 친구(아담 드라이버)는 뛰어난 처세술을 발휘하여 영주로부터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맷 데이먼)의 공을 가로채고, 심지어 자신의 부하와 작당하여 그 아내를 강간한다. 그는 "우리는 사랑 앞에 무력했다"며 자신의 폭력을 사랑으로, 합의된 것으로 포장한다. 극 중 남편 친구는 자신의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도취된 나르시시스트이며, '사랑 앞에 무력한 자신'에 대한 연민에 쩔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진실을 가르는 결투를 주관하는 왕, 샤를 6세. 최고 존엄의 권력을 가진 10대 청소년 왕은, 야비하기 그지없는 범죄,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이 모든 상황을 낄낄거리면서 즐기는 철딱서니 없는 망나니다.


극 중 자신이 가진 권력에 부합하는 역량, 인품, 도덕성을 지닌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재수 없거나, 찌질하거나, 무능하거나, 야비하거나, 잔인한 권력자들의 면면을 솜씨 있게 보여주는 영화.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남성 권력자들이 그려지는 방식을 두고, SNS에서는 이 영화가 '남혐 영화'라고 주장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오히려 견제받지 않는 권력 질서가 지배했던 중세의 실제를 잘 포착하여 보여줬다는 점에서 일종의 '다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잘못된 방식으로 부여된 권력을 가진 자가 그 힘을 올바른 방식으로 행사할 리가 없다.


권력을 가진 자가 도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가진 자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한 권력이 오직 남자에게만 주어지는 사회에서, 통제되지 않는/부당한 권력을 가진 '남'자는 재수 없거나, 무례하거나, 찌질하거나, 무능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야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문제적인 지점. 세 명의 관점에서 사건을 구성한 이 영화에는 강간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여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그 폭력 장면을 얼마나 여러 번 많이 찍었을지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강간 장면, 이 문제적 구성이 가능했던 것은 감독, 각본 모두 백인 남성이 참여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감독이 배우의 안전과 복지를 헤아렸다면, 영화를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각본은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이 공동 작업했다. 벤 애플렉은 동생 케이시 애플렉의 성폭력 사건에 문제적인 방식으로 침묵했고, 맷 데이먼은 미국 영화계 미투 국면에서 부적절한 발언(망언)을 거듭한 바 있다. 그런 전력이 있는 두 배우가 참여한 각본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의 한계다.



영화 정보 : https://www.youtube.com/watch?v=bO1cG93mp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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