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 여성 혐오의 기술/코드_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여성 혐오로 점철되어 있다. 머리가 멍하고,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상식 수준의 인권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 외에도 언뜻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최근 한국에서 여성 혐오 테러리스트들이 개발한 기술과 코드를 활용한 여성 혐오는 불쾌하지만 명료하게 인식되지 않고 지나치게 되는 것이 많다. 전형적 여성 혐오와 새로운 여성 혐오, 이 콘텐츠에는 그 모든 기술이 망라되어 있다. 폭력의 향연을 향한 폭주 기관차,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여성 혐오 기술/코드 중 몇 개를 짚어보겠다.
1. 여성 혐오의 고전 문법, 모성의 찬양/낙인(비난)
여성 혐오의 고전적 양식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모성 신화다. 이상적/규범적 모성은 찬양하고, 그 틀에 맞지 않는 모성에는 낙인을 부여하는 문법이 그것이다. 모성 신화를 활용한 여성 혐오는 찬양 또는 낙인 중 하나에만 집중하기도 하지만, 때로 두 가지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대비하거나 모호하게 섞어 쓰는 기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콘텐츠가 활용하는 기술은 후자다.
1) 위대한 분노 유발자 어머니
한 어머니가 재난이 발생한 학교 현장으로 아들을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위대한 어머니’라는 모성 신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실제 이 ‘어머니’의 행동은 막무가내이며, 무모해 보이고, 짜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이 플롯에는 모성에 대한 찬양과 분노 유발자 ‘김여사’ 코드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2) 위대한 비행 청소년 어머니
이 콘텐츠에는 수많은 ‘문제’ 청소년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인물은 모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배경/맥락이 소거된 채, ‘미혼모’, ‘비행 청소년’ 등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된다. 이 콘텐츠에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청소년 미혼모의 출산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인물은 출산 직후 아기를 두고 나왔다가 감염병이 퍼진 것을 보고 아이에게 되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혼자 아이를 낳은 이 사람은 ‘비행 청소년-미혼모’라는 나쁜 모성의 자리와 결국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좋은 모성의 자리를 왕복하는 닫힌 캐릭터다. 결국 이 인물은 ‘폭력적인 공간으로서 학교’라는 이 콘텐츠의 ‘사회 비판 의식 코스프레’에 도구로 사용되어 전시된 수많은 캐릭터 중 하나다.
2. 남성성 훼손자 여성 페르소나
1) ‘남성성의 훼손자=여성’이라는 집단 망상
가부장제는 남성 집단 내에서 남성을 위계화하고, 남성에게 지속적인 위협과 모욕을 가함으로써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가부장제 사회를 살아가는 ‘남자의 일생’에서 남성성에 대한 협박과 모욕의 핵심 행위자는 다름 아닌 남성이다.
그런데 이 폭력적인 시스템을 이해하는 언어와 지적 역량이 결핍된 남성, 그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존 기술도, 상상력도 갖추지 못한 남성은 그 시스템에서 쌓인 억압, 분노, 무력감을 안전한/만만한 대상, 즉 여성에게 투사한다. 이 투사의 양상은 여성에 대한 직접적 공격, 여성에게 능욕당한 남성성이라는 집단적 망상의 표출, ‘사과받기' 프로젝트 등이다.
자기들끼리 일상적으로 ‘보이루’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어떤 여성이 ‘자이루’라는 말을 사용하면 집단적 광기에 가까운 방식으로 폭발적으로 분노를 드러내는 것, 한국 사회에서 남초 집단을 중심으로 창궐하고 있는 ‘여자 사냥’ 게임, 손가락=작은 고추 해프닝, 안산 선수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 ‘대림동 여경’ 조작 사건, 다양한 버전으로 변이를 거듭하는 디지털 성범죄 등은 모두 이 현상의 일부다.
2) 남성성의 훼손자 여성 페르소나
이 콘텐츠에는 한국 남성의 집단적 망상이 투사된/반영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것도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남성성의 훼손자=여성’이라는 집단 망상이 다소 은폐된 방식으로 재현되어 있다. 이 콘텐츠에는 아무런 이유/맥락 없이 위악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고립된 생존자 무리에서 집단 내 분란, 갈등을 일으키면서 특정인을 노골적으로 욕보이는 한 여학생도 그중 하나다.
분란 유발자인 이 여학생은 동기 남학생 한 명을 이유 없이 괴롭힌다. 괴롭히는 방식으로 보면, 직접적으로 남성성을 욕보이는 방식이 아니라 그 남학생의 경제적 배경을 혐오의 재료로 삼는 방식이다.
일견 이러한 재현은 여성 혐오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콘텐츠에서 그 남학생 역을 맡은 배우와 여학생 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을 보면 왜 이 페르소나가 한국 남성의 집단적 망상이 투사된/반영된 여성 캐릭터인지 알 수 있다.
남학생 배역을 맡은 배우가 극 중에서 가난하지만, 품성이 착하다는 점, 무엇보다 남성 또래 중에서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하다는 점이다. 가난하고 참을성 있으며, 선량한 마음씨를 가진 ‘작은’ 남학생이 속수무책으로 예쁘고 싹수없는 여학생에게 당하는 장면, 이는 ‘한남이 원하는 그림’이다. 시청자에게 이 여학생을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이 콘텐츠 제작자의 여성 혐오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일명 은근슬쩍 여성 혐오 부추기기 기술.
3) 남성을 대신하여 여성을 처벌하는 여성
이처럼 은폐된 방식으로 여성 혐오를 실현하는 캐릭터를 내세운 방식과 더불어, 이 콘텐츠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술/코드는 여성을 내세워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다. 이 콘텐츠에서 남성성의 훼손자로 만들어진 여성을 응징하는 인물은 또래 여성이다. 그것도 가장 똑똑하고, 이쁜 여성을 통해서 남성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여성을 처벌하게 하는 그림, 이것도 ‘한남이 원하는 그림’이다. 일명 손 안 대고 코 풀기 기술.
이 두 가지 그림은 여성에 대한 분풀이와 테러가 정상화된 한국에서 개발되어 창궐하고 있는 최신 여성 혐오 기술이다. 내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제작진을 괜히 ‘한남’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 인류 전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 우리는 이 점을 이미 코로나19를 통해 깨달은 바 있다. 이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아무런 비판 없이 흥행하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높아질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한국식 여성 혐오를 전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결국 한국 콘텐츠가 여성 혐오를 수출함으로써 인류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