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여성에 대한 호칭 문화에 관하여
1. 드라마 속 노년기 여성 캐릭터
한국 드라마에서 노년기 여성 캐릭터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노년기 여성 등장인물에게 주어지는 가장 많은 배역은 '할머니'다. 가족 내 여성의 지위로서 '할머니' 배역은 극 중 모든 사회적 관계로 확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극 중 가족 안에서 '할머니'인 여성은, 그 캐릭터의 자장 안에서 배역을 수행한다.
드라마 <한 사람만>, 이번 겨울에 본 드라마 중에서 서사와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던 드라마다. (안은진 배우와 문정민 작가를 관심 창작자 목록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할머니' 캐릭터다. 극 중 주인공의 할머니(고두심)는 '할머니'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응축된 인물이다. 핏줄을 위해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캐릭터. 이런 캐릭터가 가족 관계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관계로 확장된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할머니는 모든 상황에서, 모든 관계에서 그러한 배역을 맡는 것이다.
이런 할머니 서사가 이젠 식상할 법도 한데 여전히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일종의 긴장완화용 '쉼표'로 활용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익숙한 코드를 삽입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한 그런 용도 말이다. 어쨌건 나는 이 드라마에서 할머니 캐릭터가 아쉬웠다. 노년기의 여성 배우들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드라마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2. '어르신' 말고, '할머니' 말고
나는 평생 한국에서만 살았는데, 주기적으로 문화 충격을 겪는다. 그중 하나가 호칭 문제. 나는 '어머님'이 아닌데, '어머님'이래. 40대 어느 무렵에는, 병원에 가면 접수대 직원 또는 의사나 간호사한테 '어머님'이라고 불리는 상황이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황당했고, 한동안 그러려니 하다가도 불편하고 대답하기 싫고 그랬다. 왜 특정 나잇대 여성들이 모두 '어머님'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모든 여성들이 '어머니'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 할지라도 병원 등 공공기관에서 '어머니'로 호명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드라마 <한 사람만>에서 '할머니 배역'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10년 후면 내가 '어르신' 또는 '할머니'로 불리겠구나 싶었다. '어머님'도 싫었는데, '어르신', '할머니'라니! 상상만 해도 싫다. 호칭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노년기 여성에 대한 호칭 문화 변화, 내 문제다. 내가 문화적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 60대 이후에 살아있다면, '어르신' 말고, '할머니' 말고 다른 호칭으로 불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