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물건을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올해 초 대학 강의 수업 자료를 버리고 나서, 화장대 서랍에 오랫동안 모셔놓은 액세서리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체격이 달라져서 몸에 맞지 않는 것도 있고, 무엇인가를 착용하고자 하는 욕망이 소멸된지 오래 되었기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가벼워지기로 했다. 나중에 갖고 싶은 액세서리가 생기면 그때 사면 되지 뭐. (나에게는 나눠주고 또 사는 습관이 있다.)
그동안 칩거하느라 좀처럼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작년에 수업을 들었던 이들을 집에 초대하게 되어 액세서리 물려주기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었다. 세 분에게 나눠드렸는데, 그중 한 분이 액세서리 컬랙션 사진을 보내주었다. 떠나보낸 액세서리 사진을 보다 보니, 액세서리에 얽힌 일화나 당시 상황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래서 가볍게 끄적거려 보았다.
나눠준 것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대학 때 산 미제 머리핀 세트. 그중 붉은색 핀이 여태껏 남아있었다. 나를 아는 이들은 저 컬러풀한 머리핀이 좀처럼 나와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대학 때까지 나는 잘 꾸미지 않고 살았는데, 돌이켜보니 거기엔 생각보다 복잡한 맥락이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긴 머리를 한 적이 없었다. 유년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긴 머리가 허락되지 않았기에, 청소년기에는 두발 규정 때문에 늘 짧은 단발이었다. 내 머리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대학 때에도 늘 커트 머리였다. 왜 그랬을까? 머리나 외모를 가꾸는 행위가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이라 여겨 자존심이 상하기 싫어서? '돼지'라는 놀림으로 생긴 부정적 신체 자아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서? (과체중이 아니었는데, 가족들이 그렇게 불렀다. 별명과 관련된 '식탐 많은 여자애'라는 시선은 형제들 간 먹거리 경쟁에서 나를 위축시켰다.)
어쨌건 내가 머리를 기른 건 대학 졸업 후였다. 그럼, 대학 때 내가 저 핀을 왜 샀지? 내가 다녔던 대학의 여학생에 대한 세간의 고정관념, 즉 '00대 여자'는 여성성이 삭제된 '남성화된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냉소, 비난이나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내 몸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 한 번도 제대로 닿지 못한 여성성의 땅에서 '안전하게' 여성성을 만끽하고 싶은 열망, 아니면 은밀한 망명의 꿈 때문일 수도 있다. 저 핀이 물 건너온, '미제'였거든.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산 은목걸이 귀걸이 세트, 진주 귀걸이-목걸이 세트 등 저 시절에 선물 받거나 산 것들을 떠올려오면, 뭔가 '귀부인'스러운 간지가 느껴진다. 내가 명품에 대한 욕망이 1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나를 고급스럽게 보이고 싶은 욕구, 언뜻 그것은 계급 상승 욕구와 등치되지 쉽다. 그러나 사회초년생 시절의 '고급스러움'에 대한 욕구에는 나를 입증해야 하는 일상의 피로감, 아무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편안하게 숨쉬고 싶은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석사 과정, 박사 과정 중에 산 것들은 주로 화려하거나 반짝거리는 것들이 많다. 그중 팔찌는 주로 나 혼자 보고 즐길 용도였다. 내 손목에 언뜻 반짝거리는 것이 보이면 마음이 문득 화사해 지거든. 반짝임이 없는 가죽 팔찌도 있는데, 그것들은 일종의 부적 같은 용도였다. 그러니까 그것을 팔목에 착용하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