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 똥멍청이(Mon chien Stupide, 2019)
1. 영화 <우리집 똥멍청이(Mon chien Stupide, 2019)>
※ 이 글에는 영화에 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주인공은 50대 중반 남자. 영화 트레일러 내용을 소개하자면,
그는 20대 중반에 모든 문학상을 휩쓸며 도서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결혼 후 아이 넷을 키우며 살아온 지난 25년 동안 쓴 글은 ‘똥(shit)’ 취급을 받았다. 관광지 해변의 근사한 전원주택에서 살면서 그럴듯한 작업실을 갖고 있지만, 자녀 및 아내와의 관계, 글쓰기 작업 등 어느 것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없다.
그의 상황은 이렇다. 장성한 자녀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지만 부모에게 얹혀살며 돌아가며 부모가 개입해야 할 이벤트를 일으키고, 다른 자식과 비교당했다고 혹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한때 유능한 문학 비평 전공자였으나 결혼 후 비평가로서의 길을 포기한 아내는 불면, 우울, 짜증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이 꽉 막힌 주인공의 삶에 어느 날 변화의 계기가 찾아온다. 폭풍우가 치던 어느 날, 덩치가 어마어마한 거대한 개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그의 집에 들어온 것. 개는 비싼 가죽 소파를 떡 하니 차지하고 앉아 도무지 비킬 생각이 없다. 식구들이 돌아가며 내보내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모두 실패. 이 개는 다소 막무가내로 고집이 세고, 인간이건 개이건 수컷만 보면 달려들어 성적 리비도로 제압한다.
남자는 모든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이 무례한 개를 키우겠다고 선언한다. 영화 제목에 포함된 단어, ‘멍청이 stupid’는 그가 개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남자가 ‘멍청이’를 키우면서, 그의 주변은 서서히 정리된다. 자식들은 남자와의 갈등이 표면화되거나 이런저런 계기를 거쳐 하나둘씩 집을 나간다. 늘 도시에서 살기 원했던 아내 역시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이와 눈이 맞아 그의 곁을 떠난다. 그는 그렇게 폭풍이 치던 날 찾아온 ‘멍청이’와 둘만 남게 된다. 식구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서 혼자가 되어 외로움, 상실감, 회한 등의 감정에 사무친 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작가 ‘리비도’를 회복하게 된다는 이야기.
2. 가족 망명자 : 떠났을 때 비로소 가능한 회복
요즘 중년 주인공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보고 있는데, 영화를 볼 때마다 ‘보통의 삶’에 깔린 우울과 무기력을 확인하게 된다. 영화에서 어느덧 그것이 기본값이 되어버려 알아차릴 수 없게 되었거나 삶을 완전히 압도해 버린 일상에서 변화의 계기는, 사소한 일상의 사건이다. 이를테면 뜬금없이 덩치 큰 개가 내 집을 쳐들어오는 것과 같은...
일상의 흐름을 끊거나 멈추게 하는 엉뚱한, 혹은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그 사람에게서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게 하는 힘은 누적된 어떤 몸과 마음의 상태다. 피로감, 공허감, 우울 등이 ‘이벤트’를 만나면 그동안 쌓인 응력이 폭발하면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된다. 중년의 주인공에게 그런 공간 이동이 일어나는 영화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Brad Mehldau의 잔잔한 피아노 재즈 음악이 흐르는 일종의 프랑스식 블랙 코미디 영화인데, 극 중 주인공 부부가 내 또래라서 공감이 되거나 몰입하게 되는 지점이 많았다. 되는 일 하나 없는 중년 작가인 남자 주인공이 딱 내 나이이고(55세), 나의 아빠가 돌아가신 나이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30대까지 반복적으로 꾸었던 아빠 꿈이 생각났다.
내 나이 22세에 돌아가신 아빠는 ‘가족으로부터 망명한 자’의 모습으로 내 꿈에 나타났다. 꿈에서 그는 ‘집 나간 가장’이었다. 그는 때로는 중병에 걸린 모습으로, 때로는 가족과 인연을 끊고 멀리 숨어버린 가장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중병에 걸린 그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었고, 망명한 그는 가족과 만남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가족 중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영영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고자 했다. 자신이 어디에서 머무는지 알려주려 하지 않았고, 혼자 있고 싶어 했으며, 나를 만나도 반가워하지 않았고 거리를 뒀다.
아빠는 평생 자기 방식대로 가장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의 생계를 걱정했던 분이다. 그래서 20~30대에는 아빠가 내 꿈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몹시 낯설었고, 서운했으며,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내 나이 50대 중반이 되어 돌아보니, 돌아가실 무렵 아빠는 자신의 역할에 몹시 지친 상태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선명하게 된다. 가족 안에서는 ‘아빠 노릇’, ‘남편 노릇’, 친족 집단 안에서는 ‘남자 어른 노릇’을 하느라,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50대 중반이 되어 느꼈을 피로감과 공허함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평생 자신에게 할당된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가족으로부터 독립이 영원히 불가능했기에 그런 삶에 지치고 지쳐버린 그가 ‘가족 망명자’의 모습으로 내 꿈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MY DOG STUPID의 주인공 부부의 삶에서, ‘가족 망명자’가 되어야 행복을 탈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스스로 차마 가족을 버릴 수 없었던 영화의 주인공 남자는, 자신의 삶에 침입한 개 stupid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방식으로 가족으로부터의 독립/망명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는 무엇인가/누군가를 떠났을 때 비로소 가능한 회복, 역설적인 방식으로 탈환하게 되는 행복을 보여준다. 삶은 이상한 역설로 가득하다. 그 역설이 삶을 그나마 버틸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재미있거든.
2022년 1월 1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