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잡설

by 권수현

1. 대학 강사를 그만두어서 좋은 점


대학 강사로 살 때 주기적으로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그런 증상은 주로 학부 성적 처리 기간에 생겼다. 상대 평가 체계에서 성적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 버거웠고, 아무리 오래 강사 일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특히 학부 전공 수업은 학생 대부분이 성실하고, 치열하고, 뛰어났기 때문에, 제한된 인원에게만 A학점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A마이너스에서 B플러스, 이 점수 구간에 학생들이 많이 몰려있을 경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성적 처리할 때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결석, 지각을 자주 하는 학생이 있으면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했다. 적어도 학점 평가할 때 고민해도 되지 않으니까. 그런 마음이 생기면 학생들에게 또 미안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난 4월 짝꿍이 성적 처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지켜보다가, 내가 대학 강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성적 처리에 수반되는 물리적, 감정적, 정신적 노동을 하지 않으니 자유롭고 편안했다. 나는 대학의 상대평가 시스템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 늘 의문이었다. 이 시스템은 교육적 가치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에 응답하여 구축되었다고 생각한다. 출신 학교에서 받은 학점이 '공정'한 지 기업이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대학이 기업 맞춤형 시스템을 갖추어 졸업생의 경쟁력을 증명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라고 본다. 처음에 이런 문제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는데, 오래 하다 보니 그냥 적응해 버려서 어느덧 문제의식 없이 괴롭기만 한 상태를 견뎌왔던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강사를 그만두니 편하긴 한데, 마냥 편하기만 하지는 않다.


2. 10년 만의 어떤 만남


짝꿍이 어제 학교에 다녀왔다. 2년 3개월 만이었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수업을 온라인 비대면으로 집에서 했고, 임용 이후 계속된 선배 교수의 괴롭힘을 신고한 후 학교의 대응 태도와 처리 방식에 실망하여 보직을 거부하고 학교에 아예 가지 않았다. 보직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학교 측과 이런저런 실랑이를 했으나, 가해 교수와 어떻게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근무할 수 있겠냐고 항의하고 버텼다. 다음 학기부터 대면 교육으로 전환되면 어쩔 수 없이 학교로 출근해야 하겠지만, 그전까지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연구실을 같은 건물의 다른 층으로 옮겨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바뀐 연구실은 문을 열면 창문으로 건물 밖 아름드리나무가 보이는 그런 방이다. 어제 짝꿍이 새 연구실에 간 것은 이삿짐센터, 사무실 청소 업체 등을 통해 이사와 청소가 완료된 후, 이런저런 마무리 정리 작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짝꿍이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한 제자가 찾아와 만났다고 한다. 그 제자는 1학년을 마치고 이러 저런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그때 자퇴 서류에 서명을 받으려고 만났을 때 짝꿍이 10만 원을 봉투에 넣어주며(내가 주라고 했음) 격려와 응원의 말을 몇 마디 했더랬다. 그 제자가 학교를 그만 둔지 10년 만에 연락 없이 문득 찾아왔고, 그를 2년 3개월 만에 학교에 간 짝꿍이 만난 것이었다. 그 제자는 몇 년 전에 작은 가게를 열었고, 코로나 시기에도 꽤 장사가 잘 된다고 했다고 한다. 10년 전에 만났을 때도, 어제도, 그 제자가 약간 울컥한 모습을 보였나 보다. 20대엔, 누군가 격려해 주는 말 한마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 한 마디가 그렇게 소중하고 절실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학기 친밀성과 돌봄 관련 수업 과제물에 한 학생이 이렇게 썼다. '어른한테 위로받은 기분이 드는 수업'이었다고. 그 '위로'라는 단어에서, 한국에서 2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를 상상했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을 떠올리면, 그리고 짝꿍이 가르치는 학생들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그들의 '필요'를 상상하게 된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면서, 벼랑 끝 위태로운 순간을 거쳐 터널을 빠져나져 나오느라 많은 에너지를 써버린 짝꿍은 어느덧, 나이 든 중년이 되었다. 짝꿍에게 그동안 잘 살았다고 말해주었다. 짝꿍이 만난 그 제자에게도 잘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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