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백인을 찬양하라, 미국식 구원 서사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 2009)
미국에는 특유의 국민국가 서사가 있다. 슈퍼 히어로가 외부의 사악한 세력에 맞서 사람들을 보호해 주거나 세상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는 '영웅 서사', 부자가 가난한 아동청소년을 입양하여 계급 상승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입양 서사'. 입양 구원 서사로는 고아 소녀가 부자 노인의 눈에 띄어 입양되어 상류층 사회에 편입되는 뮤지컬 영화 <애니>, 역시 고아인 10대 여성 청소년이 익명의 남성의 후원을 받다가 그와 결혼하여 상류층이 되는 소설 <키다리 아저씨>가 대표적이다. 대개 복음주의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교차 인종간 입양(백인이 흑인, 아시아인, 아메리카 선주민 영유아 혹은 아동을 입양하는 관행)은 이러한 구원 서사의 현실 버전이다.
픽션 서사에서 오갈 데 없는 '불쌍한 고아'의 보호자- 구원자는 모두 백인 남성 부자다. 백인 부자 남성은 선량하고, 자상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열등한 타자에게 자선을 베풀어준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즉, 이 서사에서 백인 남성은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도덕적 헤게모니도 독점하는 우월적 존재다. 이러한 서사의 공통점은 아메리칸드림의 아이콘인 부자를 보호자이자 구원자로 설정하여 미국 국민의 정체성을 백인 남성 상류층 계급으로 등치 시킨다는 점이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 2009)는 미국의 인종간 입양을 소재로 한 전형적 미국식 입양 구원 서사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의 미국식 '미담'의 내용인 즉 이렇다.
덩치가 엄청나게 커서 '빅 마이크'라고 불리는 흑인 남성 청소년 마이클 오어는 줄곧 흑인 빈곤층 동네에서 살아왔다. 그곳은 흑인 남성은 언제든 죽거나 다치거나 범죄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 그 외의 선택지가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그런 곳이다. 그런 그에게 그곳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큰 덩치 덕분에 미식축구 선수로서 가능성이 눈에 띄어 백인 상류층 사립학교로 전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돌봐주던 위탁 가정이 갑자기 그곳을 떠나면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 그런 그를 그 지역의 전형적 백인 상류층 가족이 돌봐주고 입양한다. 그는 백인 가정의 보살핌과 지원 속에서 미식축구로 성공하게 된다는 이야기.
영화 속 어마어마한 덩치의 흑인 남성 청소년 '빅 마이크'는 그의 보호자를 자처한 백인 가정에 처음부터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는 공격성이 거의 없으며 자질 및 인성 검사 결과 오직 '보호' 항목에서만 인간적 의지와 욕구를 보이는 순하디 순한 성정을 갖고 있다. 정의감이 남다른 백인 가정의 전업 주부 엄마는 그의 이러한 '보호 성향'을 간파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뛰어난 미식축구 선수로 키워낸다.
상류층 백인 가정이 오갈 데 없는 흑인 남성 청소년을 거둬주고 가난과 범죄로부터 구원해주는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 그런데 이 미담은 성별, 인종, 계급 차별에 바탕을 둔 미국식 영웅/구원 서사의 문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 메시지를 꼽아보자.
첫째, 아메리칸드림이 지시하는 능력주의 성공 신화다. 가족도, 집도 없는 흑인 청년이 미식축구 스타가 된 이야기다. 유능하기만 하다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다.
둘째, '구원'을 매개로 하는 '극복' 서사다. 영화 마지막에는 위험이 난무하는 흑인 거주 지역에서 결국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젊은 남성의 이야기가 삽입된다. 보통의 흑인 남성의 삶의 경로 중 하나다. 영화 속 '빅 마이크'는 흑인 남성으로서는 예외다. 그리고 그 예외는 주류 백인의 개입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백인 우월주의 서사다.
셋째, 백인 정상 가족의 규범성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주의'다. 백인 입양 가족은 두 명의 자녀와 부모로 이뤄진 전형적 정상가족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 형제자매로부터 분리되어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란 '빅 마이크'에게 가장 강한 생존 욕구는 '가족 보호 욕구'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고 입양해준 백인 가정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강한 보호 의지를 나타낸다.
나는 흑인 청소년 '빅 마이크'가 백인 가정에 의해 선택되고, 입양되고, 길들여지고, 사회화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그 풍경이 마치 덩치 큰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인간 가정에 입양되어 착하고 말 잘 듣는 경비견으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여러모로 그랬다. ' 마이크'는 덩치는 엄청나게 크지만 순하고 사회화되기 쉬운(길들이기 쉬운) 품성을 가진 청소년-청년 흑인 남성이다. 그의 생모는 아버지가 다른 10명 이상의 형제자매를 낳았으나, 자식들이 어릴 때 모두 다른 위탁 가정으로 보내야 했다. 뿔뿔이 흩어진 형제자매들은 서로의 생사를 모른 채 위탁 가정의 '선의' 또는 '자의'에 기대어 살아가게 된다.
오갈 데 없는 '빅 마이크'를 지나치지 않고 보살펴주고 이끌어주고 응원해준 백인 입양모 역할을 산드라 블록이 맡았다. 이 배우에게서 느껴지는 호감과 매력으로 인해 이 영화는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보인다. (배우의 힘이란 참으로 강력하다) 그러나 내게 이 영화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궁극적으로 부유한 백인에 의한/을 위한 이야기이자, 부유한 백인을 찬양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흑인은 영원한 불행의 집단 거주지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거나, 간혹 선의를 가진 부유한 백인에게 우연히 선택되어 백인 사회에 편입되는 예외적 존재이다. 흑인의 삶에서 행복은 기본값이 아니라 아주 보기 드문 '우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우연'의 열쇠는 부유한 백인의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