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말은 하지마

웃음의 대학(笑い大學: University Of Laughs, 2004)

by 권수현

※ 이 글에는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배경은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의 일본 도쿄. 츠바키 하지메(이나가키 고로 분)는 전통적인 서민 동네인 아사쿠사의 한 희극 극장의 전속 작가이다. 그가 일하는 극장 이름은 일명, 와라이노 다이가쿠(笑い大學), 즉 '웃음의 대학'이다. 전쟁을 앞두고 대중 매체에 대한 정부의 검열은 한층 강화되고, 연극이나 영화는 상영되기 전에 반드시 정부의 검열을 거쳐야 했다. 유머 감각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데다가 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전 국민이 단결하여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찰떡같이 믿고 있는 엄숙주의자 검열관 사키사카 무츠오.

희극 작가인 츠바키와 냉정한 검열관인 사키사카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키사카의 검열을 거친 작품들은 온통 ‘삭제’라는 빨간 딱지가 붙여져 너덜너덜해진 다음에야 겨우 허가 판정을 받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했다간 여지없이 ‘불허가’ 도장이 꽝! 찍혀버리고 만다. 작가 츠바키는 검열관에게 불허가 판정을 받지 않기 위해 그가 요구하는 대로 대본을 고쳐야 한다.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이 난국을 타계해야하는 시기에 뭐가 희극입니까?”

웃음과 유머는 국가를 배반하는 반동적인 행위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검열관은 희극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서양으로 설정되어 있던 등장인물과 배경을 일본으로 바꿀 것, 키스 장면은 없앨 것, 경찰이 등장하는 장면을 넣을 것, “나라를 위해서”라는 대사를 넣을 것 등...

그.런.데.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검열관과 작가의 만남이 지속되면서 뜻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웃음과 유머를 배제하고자 했던 검열관의 목적과는 달리, 작가가 그 요구를 반영하여 대본을 고칠수록 그 내용은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더욱 유머러스해지는 것이었다. 검열관의 국가주의적, 제국주의적, 엄숙주의적 요구는 희극 작가의 손을 거치면 온통 패러디와 위트로 가득한 만담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나라를 위해서"라는 대사를 넣어주세요.”

검열관의 요구는 희극 작가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우스꽝스러워진다. 이를테면 이런 대사로.

칸이치: "오미야, 난 나라를 위해 싸우고 오겠어",

"나라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나라를 위해 난 전장으로 나가겠어"
그때 거기에 나타나는 젊은 기생

그런데, 하필 그 기생의 이름이 ‘나라’이다. 그리하여 ‘나라를 위하여’의 의미는 ‘대일본제국을 위하여’인지, 아니면 ‘기생 나라를 위하여’인지 불분명해지면서, ‘국가를 위하여’라는 명분 자체가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당연히 이 대본은 땡!처리된다. 그리하여 검열관의 요구에 따라 다시 고친 대본은 더욱 재미있어 지는 것.

칸이치: "오미야, 난 고국을 위해 싸우고 오겠습니다"
"고국을 위해서라면 난 죽어도 좋습니다, 고국을 위해서라면"
그때 나타나는 칸이치의 어머니
어머니: "칸이치, 밥먹어라"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고깃국이야. 맛있는 고기 사다 놨어"
칸이치: "아, 오미야! 난 고깃국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고쿠니노 다메니(故国のために)’가 ‘오니쿠노 다메니(お肉のために)’로 둔갑, '쿠니(国,국가)'와 '니쿠(肉,고기)'의 음가가 뒤바뀌면서 ‘국가를 위해서’는 ‘고기를 위해서’로 바뀌는 것.

검열관의 의도와는 달리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본, 검열관은 작가와 함께 대본을 고치면서 조금씩 변해가다가 결국 입영통지서를 받고 떠나는 작가에게 이렇게 당부하는 지경에 이른다.

살아 돌아와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말 하지마
자네가 스스로 쓰지 않았어?
죽어도 좋은 건 고기를 위해서 뿐이야

그래. ‘국가’와 ‘고기’, 둘 중 하나를 위해서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국가’가 아니라 ‘고기’를 위해서 죽는 게 낫다. 철저하게 국가의 입장에서 국가의 권력을 집행하는 처지였던 국가주의자인 검열관 사키사카는 권력의 엄숙주의가 절대 통하지 않는 지대인 서민 동네 아사쿠사의 희극 극장가에서 웃음과 유머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1940년대 이후 조선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맥락도 없이 등장인물들이 엉뚱한 장면에서 일장기에 거수경례를 한다거나, 걸핏 하면 뜬금없이 ‘대일본국을 위해 이 목숨을 바치겠노라’를 외치는 장면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는 서슬 퍼런 제국의 검열 시스템 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알아서 기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 영화를 보다 보면 엉뚱하게 삽입된 장면 때문에 내러티브 전개 과정이 다소 어긋나거나 황당하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권력은 웃음과 유머를 싫어한다. 근엄한 권력의 얼굴은 패러디와 유머 앞에서 그 힘을 잃게 되기 때문.

최근 들어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다.

2008년 8월 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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