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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Jun 23. 2022

개의 공격성은 '질문'이 되어야 한다

 KBS <개는 훌륭하다>의 문제점에 관하여  

1. 개의 공격성은 '질문'이 되어야 한다. 


개의 공격성이라는 '이슈' 또는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문제 해결 방향과 방법은 그 지식에 기반한 분석 및 진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당연히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그 해결 방향 및 방법은 달라지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어떤 개가 공격성을 보인다면 거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교배를 거듭하며 강화된 유전적 요소, 살아있는 생명체가 가질 수 있는 질환, 출생 초기 1차~2차 사회화 과정, 살아온 이력 등이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요컨대 개가  '인간을 이겨 먹으려고' 혹은 '싸가지가 없어서'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생명체인  개의 특성, 개별적 존재로서 그 개가 살아온 이력, 인간과 함께 되면서 형성된 이슈 등 살펴보아야 할 상황들이 모두 삭제된다. 어떤 개가 다른 개 또는 인간에게 공격성을 보인다면, 언제 왜 어떤 방식으로 공격성이 드러나는지 그 양상과 더불어 그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개의 '입질'은 공격적 목적이나 성향으로만 해석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어떤 개가 입질을 한다면 이런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허리 디스크(허리 긴 종류의 개들의 고질병)나 아토피나 알레르기로 인한 것, 자기 것을 지키고자 하는 보호 본능(영역 방어/소유/모성 공격성)에 의한 것, 놀이 욕구에 의한 것, 1차(개 사회) 사회화와 2차(인간 사회) 사회화 과정의 문제로 인한 것 등이 흔히 언급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인간에 의한 학대, 방임, 유기, 고문 등의 경험을 한 이력도 그중 하나다. 


개가 입질을 한다? 개가 공격적 행동을 보인다? 그것이 해결되려면 반드시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하고, 피와 살을 가진 생명체이자 개별적인 존재로서 그 개와 관련된 수많은 배경과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개의 공격성, 그것은 질문이 되어야 한다. 


2. 훈련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학대, 그것이 정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KBS <개는 훌륭하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의 공격성이라는 '질문'을 '도덕'의 문제로 축소한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개의 공격성이라는 문제를 다룰 때 그 맥락을 삭제, 누락, 왜곡하고 오로지 인간과 개의 위계질서가 깨져서 생긴 문제로만 접근함으로써 개와 인간 보호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고 비난한다. 즉 '문제'의 모든 초점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서 '나쁜' 개와 '나쁜' 인간에게 맞춰진다. 


그 양상을 개괄해 보자면 이렇다. 이 프로그램은 기획, 편집, 방송 및 유튜브 송출에 이르기까지 개의 공격성이라는 문제에 몰입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공격성'을 보이는 반려견의 사연을 모집하여, 개가 공격성을 보이는 원인과 배경을 심도 깊게 파악하여 분석하기보다는 오직 '서열 이론'에만 의존하여 개를 물리적 힘으로 제압하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외부인을 침입자로 인식하여 이빨을 드러내는 개의 '교정'이 이뤄지는 장소를 굳이 집을 설정한다. 평생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대부분의 개가 유일하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 가장 지키고자 하는 장소가 집인데 말이다. 수많은 낯선 촬영진이 집안에 들어가 자리 잡고, 낯선 출연진들이 들어가 개와 만난다. 이 모든 상황이 개를 극도로 불안하거나 예민한 상태로 몰아가고 흥분이 제대로 고조된 시점에 훈련사가 들어가 개와 '맞짱'을 뜬다. 개는 훈련사에게 목을 조이고, 팽개쳐지는 방식으로 제압당한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유일한 인간 보호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다. 


훈련사는 때로 초크 체인을 사용하거나, 개가 다칠 수 있다고 보호자에게 미리 '정보'를 제공하고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입이 찢어질 수도 있고, 피가 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개를 바로잡을 유일한 방법이고, 그 과정에서 개가 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보호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개가 토하고, 피 흘리고, 똥을 싸는 장면들이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보유하고 있다. 댓글을 보면 이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짜릿한 쾌감을, 개/인간 보호자에 대한 분노를, 개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나쁜 개'한테 물리고 다치는 '훌륭한 훈련사'를 걱정한다. 이런 방식의 '행동 교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정상적'인 과정으로 보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 모두 단단히 무엇인가에 씐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를 홀린 것이 무엇이건 그것은 개에 대한 '무지'를 통해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야 가능한 폭력이고 학대다. 개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편견을 통해서 강력해지는 주술, 이 몹쓸 프로그램에서 그것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낱낱이 들여야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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