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만
나는 개를 키우지 않는다. 며칠씩 앓아눕는 일이 잦아서 좀처럼 키울 엄두도 나지 않는다. 다만 개의 삶을 다룬 영상을 보는 걸 즐기기에 얼떨결에 알게 된 것들이 좀 있을 뿐이다. 개에 대해서 조금씩 아는 바가 늘어날수록, 그 수십, 수백 배의 크기의 무지의 영역을 자각하게 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개와 인간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개와 인간 생태계의 일부다. 개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점, 인간의 유기와 방치로 인해 거리에서 살아가는 개들이 전국 어디에나 있다는 점, 거리에서 늘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 내가 사는 공동주택 가구의 상당수가 반려동물로 개를 키우고 있다는 점,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고 하나의 문화가 된 데 비해 관련 법과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반려동물 보살핌에 대한 시민 사회의 지식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 거기서 생겨나는 온갖 문제에 노출되어 그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2. 나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나는 인간 보호자와 함께 있건 거리에서 떠돌아다니며 살아가건 밖에서 개에게 공격당하고 싶지 않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키우지 않는 사람 간의 소모적인 '갈등'이 계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산과 들을 떠돌며 온갖 위험과 질병/사고 속에서 살아가는 개들이 없길 바란다. 인간에게서는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랑을 주는 개와 함께 살아가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난제들을 외롭게 짊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 보호자들이 없길 바란다.
나는 적절히 예의 있게 행동하는 개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개 또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한 경계심 없이 편안하게 길거리를 다닐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싶다. 개 물림 사고가 좀처럼 발생하지 않고, 예외적으로 발생했을 때조차 국가와 지역 사회가 침착하고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곳에서 살고 싶다. 개의 탄생, 사회화, 입양, 보살핌과 양육,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려동물로서 개를 키우는 일에 필요한 지식과 서비스가 공유되고 제공되는 곳에서 살고 싶다. 나는 개와 인간이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살아가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독일처럼 말이다.
지구 상에 이미 그런 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나는 개를 키우지 않지만, 그런 곳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궁금하고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