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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Jun 23. 2022

방송은 어떻게 '나쁜 개'를 만드는가?

KBS  <개는 훌륭하다 > 

1. 개를 사람 취급하기 - 의인화된 서사 부여하기 


인간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들어지는 방식 중 하나가 인간의 '동물화'다. 인간에게 고정 관념화된 동물의 인격을 부여하여 멸시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우스꽝스럽게 여기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동물과 등치 되는 사람은 열등하거나 위험한 타자가 된다. 예를 들면 어릴 적 반공 교육 덕분에 나는 북한 사람들은 늑대나 여우처럼 생긴 위험하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조금 더 진화된 방식이 악마화다. 뿔, 이빨, 손톱 등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신체 특징이 강조되는 몸을 가지고 있고, 인간을 압도하는 괴력을 가진 존재, 괴물화다. 20세기 전후반 미국에서 중국 이민자에 대한 혐오는 동물화와 괴물화 두 가지를 합친 이미지로 나타났다. 중국인은 거대한 흡혈 연체동물이거나, 추한 외모의 무시무시한 이빨과 손톱을 가진 거대한 쥐로 그려졌고, 백인 특히 백인 여성과 아이는 그 위험한 존재의 손쉬운 먹잇감처럼 그려졌다. 


KBS  <개는 훌륭하다 >는 그 반대의 양식을 활용하여 '나쁜 개'를 만들어낸다. 공격적인 개에게 의인화된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즉 개를 사람 취급함으로써 '나쁜 개'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공격하는 개'를 주제로 하는 에피소드의 절정은 출연진이 집에 낯선 이들을 불러들이고 잔뜩 흥분이 고조된 개와 훈련사가 '맞짱' 뜨는 장면이다. 훈련사는 등장할 때부터 대사를 중얼거린다. 그 내용인 즉 개를 향한 말이지만 시청자 들으라고 지어낸 대사다. 훈련사는 그 대사를 통해 흥분해서 이성을 잃은 개의 상태와 의도를 마치 사람이 말하듯이 번역하여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개가 고개를 드는 동작, 곁눈질, 눈빛, 자세, 태도는 흔히 훈련사의 대사나 번역을 통해 일종의 스릴러 장르가 된다. 주로 사람을 공격하려고 틈을 보려는 의도, 인간 보호자를 통제하려는 의도, 보호자 가족 구성원 모두를 자기 아래로 두려는 의도로 교묘하게 전달된다. 이를테면 이 스릴러 장르에서 개는 인간을 위협하는 인간 악당처럼 취급된다. 바로 그런 서사를 통해 시청자는 출연한 개를 '나쁜 개'로 인식한다. 그리고 서열 이론은 물리적 힘을 사용하는 제압의 방식으로 '나쁜 개'의 버릇을 바로잡도록 주문한다. '맞짱 뜨기' 장면에서 시청자는 '훌륭한 훈련사'가 '나쁜 개'를 응징하길 응원하게 된다. 


2. 개에 대한 공포심 자극하기 


이빨, 발톱, 날쌘 몸, 사냥 본능 등 신체 특징을 가진 개는 쉽게 악마화 될 수 있다. 인간이 두려움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개라는 동물의 신체 특성을 활용하되, 개를 두려운 존재로 상상하거나 기억하게 자극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개에게 물리거나 위협당한 기억을 자극하거나, 혹은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나는 개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개한테 쫓기거나 위협당한 기억 때문이다. 

첫 번째 기억은 30대 초반 집 근처에서 있었던 일이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목줄이 풀린 작은 개가 나타나 나를 향해 공격적으로 짖으며 쫓아왔다. 겁에 질려 도망가다가 나도 모르게 화단 위로 올라갔고 개의 주인인 젊은 커플이 느긋하게 나타나 웃으며 '안 물어요' 이러면서 개를 데리고 갔다. 그때 느꼈던 그 개에 대한 공포와 그 젊은 커플에 대한 분노,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 번째 기억은 부탄 여행에서 혼자서 숙소로 걸어가던 중 떠돌이개 여러 마리에게 둘러싸여 위협당한 적이 있다. 큰 개 3~4마리가 나를 둘러싸고 빙빙 돌았는데, 그때 느꼈던 공포는 엄청난 것이었다. 부탄에는 어딜 가나 떠돌이개들이 너무 많았고, 대부분 피부병에 걸려 털이 많이 빠져 있었고, 이런저런 심각한 병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나를 위협했던 개들 중 한 마리는 한쪽 눈이 없었고, 굶주려 있는 듯했다. 다행히 숲 어딘가에서 소리가 나가 그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근처에 있었던 일행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별일 아닌데 괜히 호들갑이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때 나를 위협했던 떠돌이개들에 대한 공포와 일행에게 느꼈던 분노,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두려움과 관련된 기억은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두려움, 공포, 분노라는 정동(affect)에 사로잡히면 인지적 불협화음(cognitive dissonance)에 빠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 안전한 곳에 머물면서 당시의 상황을 여러 관점, 지식을 통해 해석하는 등 여러 경로를 거치면 이런 강력한 정동의 기억은 그 무게도 영향력도 달라진다. 


내가 <개는 훌륭하다>를 보면서 무심코 훈련사가 개를 제압하는 장면과 훈련사가 보호자를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장면에서, 공격적 개가 나오는 에피소드의 유튜브 영상에 달린 일부 댓글(보호자를 비난하거나, 공격적 개에 대한 폭력적 제압을 찬양하는 댓글)에 조금이라도 통쾌한 감정을 느꼈다면, 내가 개에게 위협당했던 그 기억과 연결되어 그때 느꼈던 감정이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의 상황, 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차단되어 있기에 개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 증폭된다는 것이다. 개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개에 대한 무지를 통해서 가능하다. 개에 대한 무지, 이것은  KBS <개는 훌륭하다>의 흥행을 위해 유지되어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나는 개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돕는 텍스트를 통해 그러한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참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3. '개가 인간을 길들인다'는 생각


어떤 개의 공격성이 인간 보호자가 제대로 통제하거나 관리하지 못해서 생겨난 것이라면, 그것은 서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보호자의 리더십 문제이며, 개의 언어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 개와 인간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이며, 인간이 개와 함께 살아가려면 개의 언어(canine language)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개가 인간을 길들인다?


'길들이기', '가스라이팅'은 힘의 오남용을 사용한 인권 침해, 즉 학대 이슈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것을 개에게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다. '개가 인간을 길들인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는 인간으로 치자면 30개월 아기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개는 철저하게 인간 보호자에게 의존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개가 사람을 조종하여 길들인다는 생각, 그것은 개의 언어와 상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이며, 개라는 동물 종에 대해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은 개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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