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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밀 May 13. 2024

임신 22주 차의 일기

베이비페어에서 돈 안 쓴다던 사람 어디 갔나요?










빠르면 18주부터 태동을 느낀다는 산모들도 있고, 막달까지 태동을 거의 못 느꼈다는 산모들도 있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이루어졌건만, 아직도 이 부분만큼은 늘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이다. 입덧은 언제까지 하나요? 산모마다 달라요. 입덧 증상은 어떤 게 있죠? 산모마다 달라요. 태동은 언제부터 느껴지나요? 사실, 그것도, 결국, 산모마다 다 달라요.





나는 그동안 태동다운 태동을 못 느껴봤다. 다들 초반에는 쿵, 이 아니라 보글보글, 하는 느낌이라고 하니 뱃속이 꾸르르 할 때마다 이게 태동이라는 건지 긴가민가하던 게 고작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도 좀 더 집중해보려 하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일쑤니 아직까지는 태동을 느꼈다고 말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찾아온 5월 7일 밤. 자려고 누워서 평소처럼 배에 손을 올리고 차차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는데 손바닥으로 툭, 하는 느낌이 전해지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게 태동이구나! 방금 차차가 나랑 하이파이브를 한 거야! (하지만 손이 아닌 발로 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잔뜩 감격에 겨워 태동의 여운을 즐기다 보니 어느 순간 잠이 싹 달아났다. 한번 태동이 시작되었다고 바로 줄기차게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한 번 느껴보니 이런 태동을 좀 더 포착하기가 쉬워진 것 같다. 사실 툭, 치거나 꿀렁거리는 정도의 확연한 태동이 아닐 때에도 내 경우는 거품이 보글보글 터지는 것보다 뱃속에서 물고기가 느리게 유영하는 느낌에 가깝다고 표현할 수 있을 듯.





















5월 10일부터 3일 동안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 일찌감치 무료입장 사전 등록을 해둔 남편과 나는 금요일 반차를 내고 한적하게 구경할 생각으로 가벼운 지갑을 들고 킨텍스에 갔다.


가기 전에 주변의 육아 선배들에게 잔뜩 질문을 던졌다. 뭘 사야 해? 뭘 사지 말아야 해? 이건 가격이 어느 정도여야 괜찮은 거야? 거즈 손수건은 몇 장이나 있어야 해? 일단 거즈 손수건은 30장 정도 쟁여두면 든든하다는 대답을 시작으로 9월에 태어날 아기는 어차피 금방 추워져서 나갈 일이 적으니까 유모차를 미리 안 사도 된다, 유모차 바퀴가 너무 작으면 울퉁불퉁한 길에서 끌기 불편하다, 휴대용 유모차는 폴딩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뒤에 가방을 걸면 휙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 카시트는 360도 돌아가는 게 좋다, 카시트는 굳이 외국 브랜드로 살 필요 없다, 대체로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 봐야겠지만 50만 원대면 사도 괜찮다, 아기가 쓸 거니 아무리 싸도 DP 상품은 굳이 사지 마라─ 등등의 조언을 풍성하게 얻어갈 수 있었다.






처음 갈 때까지만 해도 남편에게 우리는 그냥 손수건이나 출산 가방에 넣을 속싸개랑 겉싸개 몇 장 사면 돼, 베이비페어에서 이것저것 살 필요 없어! 했던 나. 밤부 손수건 30장이 1만 원인데 5천 원을 추가하면 거즈 손수건 30장을 얹어준다는 말에 넘어가 결국 손수건만 60장을 쟁이고 시작했다. 그래도 손수건은 있으면 다 쓰니까 괜찮다며 애써 합리화하고 다른 부스로 눈을 돌린 순간, 밤부베베의 아기용이 바디슈트를 보고 말았다.






밤부베베, 아기 용이 아기모자와 바디슈트





이런 디자인을 용띠 아기 차차에게 입히지 않으면 누구한테 입힐 것인가. 결국 모자, 바디슈트, 손싸개를 사고 (턱받이가 포함된 세트도 있었지만 너무 흰색이라 보류했다) 조리원 들어갈 때 챙겨갈 겉싸개까지 샀다. 





밤부베베, 순한대나무 아기헤아림 온마을 겉싸개





핑크는 나도 별로 좋아하는 색이 아니라 일찌감치 제외하고, 남편의 선택을 받은 노란색으로 골랐다. 사계절용이라 폭신폭신. 






뒤에 이런 손걸이가 달려있어 아기를 더 안정적으로 안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건 밤부베베에서 특허를 낸 디자인이라고 한다. 속싸개도 여기서 살까 했지만 판매하시는 분이 보여주신 건 사용 기간이 좀 짧다고 설명하시길래 패스하고 다른 곳에서 적당히 귀여운 걸로 (남편은 할아버지 같다고 했다─ 아무리 우리 부부처럼 죽고 못 사는 사이라도 가끔씩 이런 견해 차이가 발생하고는 한다) 골라서 구매 완료. 배냇저고리와 턱받이만 사면 될 것 같은데, 이건 나중에 인터넷으로 좀 더 찾아봐야겠다.










리틀 티니, 용용 인형 양말



리틀 티니 부스에서 발견한 아기 용 인형이 달린 귀여운 양말까지 사고 난 뒤 패브릭은 정말 끝! 처음엔 양말만 보고 신생아 발에 비해 좀 크지 않나, 하고 나왔는데 마침 신생아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기의 사이즈가 이 양말에 딱일 것 같아 더 고민하지 않고 바로 구매했지. 턱받이와 쪽쪽이 클립까지 포함된 3종 세트 구성으로도 팔고 있었는데, 이건 주변 용띠 아기에게 선물하기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카시트와 유모차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카시트의 경우 내가 주변에서 추천받은 브랜드는 다이치와 멕시코시였고 남편이 추천받은 브랜드는 순성. 유모차의 경우 나는 리안, 남편은 줄즈를 생각하고 왔다. 






우선 다이치 카시트. 새로 나온 모델 말고는 따로 설명을 못 들었지만 다섯 살까지 쓸 수 있다는 점과 튼튼해 보이는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최저가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길래 나중에 조리원 가기 전까지만 사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격만 메모해 두고 일단 더 둘러보겠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줄즈 부스가 있길래 유모차를 보러 이동. 내 취향은 베이지 컬러지만 유모차는 비나 바람을 맞을 때도 있으니 얼룩이나 때가 탈 게 걱정되어 좀 더 어두운 색상을 보기로 했던 참이라, 줄즈의 네이비 컬러 휴대용 유모차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만 실제로 끌어봤을 때 바퀴가 좀 작아 핸들에 손을 올린 상태에서 힘을 주니 뒤로 젖혀지는 부분이 불안했고 유모차 아래 바스켓이 크지 않아 가방 등을 많이 담기 어렵다는 게 마이너스로 작용. 컬러와 디자인만 보고 사기엔 좀 애매한 부분들이 있어 보류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리안 부스. 잠깐 앉아 쉬고 있는데 옆 의자에 있던 부부가 리안 솔로 2023년형 유모차를 끌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 일단 리안 유모차를 좀 보기로 했다. 2023년형이 확실히 저렴했는데 확실히 새로 나온 2024년형이 좀 더 예뻐서 잠시 고민함. 둘 다 바퀴가 커서 안정적이고 (리안에서 본 유모차는 절충형이라 줄즈의 휴대용과는 다른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단의 바스켓도 꽤 넓었지만, 23년형은 바구니를 한쪽 방향으로 둔 상태로만 폴딩이 가능하고 24년형은 양쪽으로 폴딩이 가능하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사실 폴딩이야 어느 방향이든 상관은 없었지만 역시 포기할 수 없는 건 컬러와 디자인이랄까. 그래도 결국 고민에는 끝이 있기 마련, 2024년형으로 구매를 결정하게 됐다. 







멜론 컬러라고 하는데 너무 연하지도 않고 딱 좋다. 48개월까지 태울 수 있다고 하니 깔끔하게 잘 쓰다 당근해야지. 현재 주문이 많아 7월쯤 배송된다고 하길래 급하지 않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순성 카시트. 부스까지 이동하면서 잠깐 검색해 본 순성 카시트 후기가 무척 좋아서 좀 기대가 됐다. 새로 나온 우노 에어 설명을 들었는데, 후기를 찾아본 바로도 안전성이 보장되어 있는 브랜드라 카시트는 의외로 금방 구매를 결정할 수 있었다. 온누리 상품권으로 결제하니 52만 원이라는 가격 + 베이비페어 특전으로 15만 원 상당의 바구니 카시트까지 함께 가져갈 수 있었다. 바구니 카시트는 워낙 사용 기한이 짧다고 해서 살 생각 안 했던 건데, 이것도 나중에 당근하거나 주변에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될 것 같아. 카시트 역시 주문 폭주로 6월에 배송해 주실 수 있다고 해서 먼저 가져가라는 바구니 카시트만 들고 왔다.






마지막으로 본 건 일룸 쿠시노. 12월 결혼을 앞둔 동생이 통장 합치기 전에 차차 선물로 아기 침대를 사주겠다고 해서 보러 간 건데, 막상 실제로 보니 디자인도 구조도 딱히 마음에 차지 않았다. 가죽은 가죽대로 냄새가 심하다는 이야기, 패브릭은 때가 타서 추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보고 나니 결국 내 취향대로 그냥 원목 침대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설명을 듣지도 않고 돌아 나왔다. 쁘띠라뺑의 하이헨리와 숲소리 원목 침대 중 고민인데, 마침 두 브랜드 모두 파주에 오프라인 매장을 두고 있다고 해서 동생 커플과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이렇게 베이비페어 나들이도 끝! 손수건만 몇 장 산다던 사람들 어디 갔나. 그치만 손수건, 겉싸개, 속싸개, 유모차, 카시트 같은 것들을 줄줄이 사고 나니 한번 더 성큼 실감이 나는 것 같기도 해서 무척 설레는 기분이었다. 출산 전 준비할 품목들을 리스트로 쭉 만들어둔 게 있는데 나중에 공유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22주 차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는 날. 의료 정보가 포함되어 보호자 없이 산모만 들어갈 수 있는 초음파 검사라고 해서 남편이 무척 아쉬워했다. 예약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조금 더 일찍 와서 대기하라는 안내가 있었기 때문에 2시 40분쯤 병원에 도착했고, 초음파실 앞에 앉아 기다렸다. 정밀 초음파에서는 뭘 보는 건지 한번 더 확인하려고 서치해 보는데, 초음파를 잘 보기 위해 아기의 활동량이 높아지도록 초콜릿우유를 먹는 게 팁이라는 내용이 많아서 아차 싶었다. 급히 남편을 1층 카페로 보내 초코가 들어간 음료를 사 오게 했는데 카페에 초콜릿우유도 초코라테도 없다고 해서 괜히 뒤늦은 후회와 걱정. 궁여지책으로 검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병원 내부를 냅다 몇 바퀴 돌기 시작했다.



결론: 초콜릿우유를 안 먹어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좀 걸어서 그랬는지 오히려 차차가 엄청 잘 움직여서, 초음파실 선생님이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할 정도였다. 지금도 이런데 초콜릿우유까지 먹었으면 거의 차차는 무슨 플래시나 퀵실버처럼 잔상만 남기고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싶었다.








정밀 초음파 검사에서는 아기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 있는지부터 뼈나 장기, 뇌가 주수에 맞게 잘 발달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사실 아직까지 초음파는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서 선생님이 설명해 주셔야 이게 좌심방이구나, 이게 심장이구나, 하는 편.








척추의 발달 상태를 본다.
양쪽 귀를 확인한다. 화살표는 귀의 위치.
머리 크기를 확인한다.
다리뼈의 길이를 잰다.
팔 뼈의 길이를 잰다.
뇌의 발달 상태를 체크한다.
양쪽 안구를 확인한다. 화살표는 검은자위의 위치.
콧구멍 사진이지만 사심이 담겨버림. 차차가 하품하는 걸 발견한 초음파실 선생님이 너무 귀엽다고 오래 보여주셨다.
양쪽 발. 화살표는 발가락의 위치로 각각 다섯 개씩 모두 잘 달려 있다.
양쪽 손. 화살표는 손가락의 위치로 각각 다섯 개씩 모두 잘 달려 있다.
심장을 체크한다.
혈류를 확인한다.
심장 소리를 들어봤다. 아기의 심장은 성인보다 두 배 빠르게 뛴다고 한다.








입덧이 아직 좀 남아 있는데, 그래도 하루 3알 먹던 걸 4일에 1알씩 먹는 정도로는 많이 완화된 상태. 대신 먹는 게 나아지면서 살이 좀 쪄버렸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늘 173cm에 55~56kg를 유지했는데─ 임신했을 때, 그러니까 신혼여행 갔을 때까지만 해도 58kg를 찍어버려서 이게 내 몸무게 최고점인 줄 알았거든. 임신을 알게 된 직후 찾아온 입덧으로 2주 동안 4kg가 빠져서 정말 해골 같은 몰골이었던 게 바로 엊그제 같건만, 지금은 61kg라는 전무후무한 몸무게를 찍고 말았다. 그동안 이게 차차와 양수 무게가 더해진 결과라고 애써 정신 승리를 해왔으나, 정밀 초음파 검사 결과 밝혀진 사실은 차차 무게라고 해봤자 511g이 전부라는 것. 양수 무게를 더해도 그 나머지는 정말 다 내 살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제는 군것질을 조금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먹는 것도 좋지만 4주 뒤에는 또 임당 검사까지 있다고 하니 긴장해야지.





진료실로 이동해 김혜미 선생님과 한번 더 차차를 봤다. 이번엔 남편도 같이 볼 수 있었는데, 초음파실에서 진료실로 이동하는 그 짧은 사이에 차차가 또 움직여 자세를 바꾼 탓에 남편은 차차 얼굴을 볼 수 없어 슬퍼했다. 활발하니 좋지, 뭐! 결국 선생님이 정밀 초음파 결과와 마찬가지로 다 아무런 이상이 없어 좋다고 하신 말을 듣고 안심하며 진료를 마쳤다. 남편은 아쉬움이 좀 남았는지 하품하는 차차 얼굴이 인화된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봤다. 지금도 이렇게 귀여운데 태어나면 얼마나 귀여울까, 하길래 늘 하던 대로 진심을 200% 담아 차차가 오빠를 꼭 닮았으면 좋겠어, 했다. 남편 닮은 차차는 정말 얼마나 귀여울까.






늘 엄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있어줘서 고마워. 앞으로 남은 18주도 지금처럼 큰 이벤트 없이 잘 보내보자, 사랑하는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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