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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동범 Jan 28. 2024

기다리는 마음

조동범 신작시_02



 기다리는 마음*



  조동범



  나는 때때로 죽음과 조우한다.* 죽음은 어느 곳에나 있고, 나는 숙명처럼 고개를 들어 다다를 수 없는 지평선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이곳은 어디인가. 난로가 켜진 방안은 아직 춥고, 지평선의 끝에서 모래폭풍은 불어오는가. 불행으로 가득한 누군가의 전설이, 죽음을 향해 들리지 않는 음성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구나. 라디오에선 요절한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평일 오전은 어느새 쓸모없는 무료를 견디는 중이다. 가수의 창법은 어딘가 낯설고, 어느새 익숙하다. 죽음처럼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그러나 결코 죽음을 노래하지 않는구나.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국경일의 추도사와도 같은 것. 죽음이 언제나 드라마와 불행을 흐느끼는 것은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놓인 국수 한 그릇처럼 물끄러미, 평상에 앉아 바라보는 저물녘의 황혼처럼, 죽음은 다가온다. 죽음은 그렇게 내게로 온다* 나는 스스로 불길을 향해 걸어 들어간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것이 그의 불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도 죽음은 그렇게 다가온다. 어쩌면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폐장된 놀이공원의 음험한 적막처럼, 물끄러미 굴러다니는 빈 깡통처럼,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상을 서성인다. 난로가 켜진 방을 떠올린다. 방안 가득 번지는 불길을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죽음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불길 속을 걸어 나는 그렇게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 김민부 시인의 작품 제목과 시구.


  -<시와서정> 2021년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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