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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Jun 21. 2022

B. 마음공부의 유파(流派)

마음을 탐구하는 사람들

지리산은 한국의 명산이다. 흔히 도를 닦는다는 사람들에게도 지리산은 수행을 위한 명산이다. 예전에는 대전의 계룡산에서 수많은 무속인들이 기도를 올렸지만, 계룡산에서 이러한 기도가 금지된 이후로 많은 사람들, 특히 이쪽에 관계된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많이 넘어왔다고 알고 있다. 이쪽에 관계된 사람들을 설명하자면 무속인을 비롯해서 도가(道家), 흔히 신선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기공을 하는 사람들, 전통무술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불교적인 수행을 하는 분들도 있다. 다른 쪽은 잘 모르지만 불교적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얘기하자면 여기에도 여러 부류들이 존재한다.


소위 신비파, 점술파, 무속파, 기공파, 독각파, 정통파 등등 여러 종류의 유파들이 존재하고 마지막으로 산제비파가 있다. 유파라고 했지만 정해진 것은 아니고,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대략 이런 식의 유형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임의로 분류한 것이다. 여기에는 스님들도 계시고 일반인들도 있다. 이러한 분류는 불교를 표방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리산에서 수행을 하며 도를 닦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대략의 부류이기도 하다.


신비파(神秘派)는 말 그대로 신비한 일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도를 닦으면 종종 일어나는 신비한 경험에 매료되어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도를 닦거나 기도를 할 때, 마음의 심연과 연결이 되면 기존에 알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은 기독교에서는 영성을 체험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빛이 보이기도 하고 기도 중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는 것 같은 체험을 하기도 한다. 또한 새로운 차원에 들어간듯한 무중력의 체험을 하기도 하고 내가 없어진 것 같은 체험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러한 체험들을 통해 때로는 신비한 능력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러한 능력들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사람의 아픈 곳이 보이고 치료하는 능력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미래나 과거를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동물들과의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교감이 일어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경험들은 수행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고, 분명 이러한 신비한 경험을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여기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이러한 현상은 일종의 자기 시험이기도 하다. 여기에 집착하는가 아니면 떨치고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러한 체험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체험이나 현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을 한 사람들은 스스로 비교우위에 놓인다. 그래서 자기자만에 빠지며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게 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과학을 신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계통 책들의 특징은 신비한 이야기들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다고 하는 패턴이 존재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 수는 없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과학적인 증명과 함께 과학자들이나 유명인들의 말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과학적인 증명이나 유명인들이 말을 인용했다고 해서 다 그런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제대로 된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책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책들은 신비파 사람들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내용이 되기도 한다.


점술파(占術派)는 점복(占卜)이나 주역(周易)등에 빠진 사람들이다. 인간의 과거와 미래를 알려주고 그것을 통해서 경제활동을 한다. 점술이 나쁜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것을 토대로 삶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하나는 그러한 불안을 미끼로 경제적인 착취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점술이 수행자 본연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처음 시작이 마음공부가 목표인 사람이라면 스스로 호구지책에 연연하는 모습에 스스로 환멸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속파(巫俗派)도 점술파와 비슷하다. 하지만 무속파는 신비파에서 파생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의 영역은 점술파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과거를 맞추고 미래를 봐주면서 그들의 인생에 깊이 관여한다. 이들은 영적인 체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근거를 토대로 하는 점술파와 차별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는 거의 흡사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결국 이들은 천도재와 같은 조상들에 대한 제사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심을 위해서 이뤄지는 거라면 분명 그에 대한 업이 존재할 것이다.


다음은 기공파(氣功派)이다. 이들은 무술과 접목된 경우가 많다. 특히 이 기(氣)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앞뒤가 바뀐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마음공부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마음을 공부해야 하는 것 같지만 건강이 뒷받침이 되질 않으면 공부가 되질 않는다. 공부의 두 가지 틀은 당연히 정혜쌍수(定慧雙修)로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다 닦아야 하지만 선정과 지혜라는 궁극의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또한 그러한 선정과 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매우 중요하다. 마음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이 건강도 잊은 채 공부에 매진하다가 건강을 잃고 마음도 잃는 경우가 있다. 마음의 힘을 공부하는 것이 마음공부이고 몸의 힘을 공부하는 것이 기(氣)를 공부하는 것인데, 마음의 힘은 목적이 되고 몸의 힘은 토대가 된다. 하지만 간혹 몸의 힘인 기(氣)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목적을 잃은 채 언젠가는 사라질 이 육신에 대한 집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까지가 마음공부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에서 떠도는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처음에는 분명 깨닫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을 텐데, 중간에 이렇게 중심에서 벗어나 바르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꽤 존재한다.


다음은 독각파(獨覺派)이다. 여기서부터는 좀 다르게 분류하고 싶다. 독각이란 혼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공부에 대한 진심은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은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 스스로 공부에 중심을 두고 수행을 한다. 이들의 수행력은 대단한 경우가 많다. 특히 고행에 가까운 수행방법을 수년간 유지하기도 한다. 이들의 깨달음에 대한 열정은 감탄스러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에게 안타까운 점들은 그렇게 고통의 시절과 수행의 성과를 점검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한 평가는 객관적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다.

하나는 좋은 스승이 존재해야 한다. 먼저 좋은 스승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좋은 스승은 스스로 높은 도력(道力)도 있어야 하지만 제자의 수준을 알고 거기에 맞는 맞춤 공부를 시켜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와 세기(細機)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스승의 입장에선 제자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은 지옥불을 가슴에 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스승의 입장에서도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스승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한다.

다른 하나는 그런 좋은 스승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처럼 혹은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는 것처럼, 좋은 스승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스승이 명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명성에 미치지 못한 이름뿐인 경우도 많다. 또 명성은 없지만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는 분들도 있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 좋은 제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천진한 아이들 눈에는 훌륭한 도인도 이웃집 노인처럼 보인다. 그만큼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독각인 분들은 이렇게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분들인 경우가 많다. 공부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이다. 이런 분들 중에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경우 공부의 발전이 빠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혼자서 공부를 하다가 길을 잃고 열정도 식은 채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분들도 있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경우도 있다.


정통파는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훌륭한 스승과 따르는 제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도 두 가지 모습이 존재한다. 하나는 기존의 사찰들이다. 조계종과 같은 종파에 속해 있는 사찰의 경우 이러한 시스템을 잘 구비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시절 동안 전해진 역사의 신뢰감도 가지고 있다. 물론 훌륭한 스승과 제자가 있다 혹은 없다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또한 시스템과 신뢰감만으로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중생활을 통해 걸러진 마음으로 잘 다듬어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수행을 하는 스님들로 구성된 수행공동체이다. 여기에도 기존의 방식의 공부법과는 다른 수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인 경우이다. 기존 사찰의 방식과는 다른 공부법으로 공부를 하고 서로 질책하며 독려하는 경우이다. 외국의 경우 틱낫한 스님의 공동체도 이러한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는 산제비파이다. 이 사람들은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넣었다. 산제비파는 말 그대로 산에 사는 제비족들이다. 그럴듯한 말투와 외모로 도인인 척하며 여자들을 홀려서 자신의 쾌락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의 목적은 여자와 돈으로, 먼저 홀려서 자신의 여자로 만든 다음 온갖 감언이설로 교묘하게 돈을 갖다 바치게 만든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대표적인 모습은 하나로 묶은 긴 머리이거나 풀어헤친 모습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염을 기른 경우도 있다. 또한 개량한복을 입은 경우도 많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 심지어는 60대의 나이로 다양하다. 이들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주워들은 풍월로 제법 그럴듯하게 자신을 포장하는데 능하다.


독각파와 정통파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이비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들은 한 가지 유파의 모습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대부분 한두 가지가 섞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쪽 세계를 아무것도 모르거나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현혹되어 고생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가 또 다른 사이비가 되기도 한다. 이들을 만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因緣)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미리 알고 대응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다른 방법으로 나름 알차게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유파의 분류는 마음공부를 하는 모든 사람들을 분류한 것이 아니라 지리산에 살면서 본 사람들을 대략 분류한 것에 불과하다. 마음공부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이 분류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이 분류를 통해 혹시 마음공부를 하고자 하는 분들이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분류를 해보았다. 마음공부는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방황하기 쉽다. 그런 방황에서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 것이다. 이 내용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좋은 참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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