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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Jul 05. 2022

6. 업(業)

내가 나인 이유

업의 일반적인 의미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에 상관없이 업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 어떨 때는 운명이라는 의미와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때 쓰이는 의미는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받아야 하는 운명적인 상태를 업이라고 한다.


원래 이 업(業)사상은 인도 힌두교의 전신인 브라만교에서 비롯되었다. 불교에서 이 업을 차용하여 새로 발전시킨 것이 불교의 업사상이며 연기설(緣起說)이다. 연기설은 인연설(因緣說)이라도 하는데, 보통 우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로 잘 알고 있다. 


보통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나온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이 말에 의문이 생기곤 한다. 나쁜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 같고, 착한 사람은 당하고만 사는 것 같다. 꼭 선함이 좋은 결과를 낳지도 않고 악함이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의 원인으로 하나의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결과는 수많은 인연에 의해 발생한다.     


인과설(因果說), 인연설(因緣說그리고 연기설(緣起說)     


일반적으로 인과(因果)는 원인(原因)과 결과(結果)를 의미한다. 모든 결과는 원인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을 인과설(因果說)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 세상에서 보면 하나의 결과는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하나의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원인이 존재한다. 여러 개의 원인 중에 근본적인 원인을 인(因)이라 하고 보조적인 원인을 연(緣)이라 한다. 쉽게 생각해서 식물이 생장하기 위해서 주원인은 씨앗이고 보조원인은 땅, 물, 그리고 햇빛이다. 씨앗을 인(因이)라 하고 땅, 물, 햇빛을 연(緣)이라고 한다. 이것을 인연설(因緣說)이라고 한다.


그런데 식물의 씨앗은 배고픈 새에게는 배고픔을 없애주는 보조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른 곳의 주원인이 또 다른 곳에서는 보조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연기설은 이렇게 인연들이 얽히고설켜 있다고 보는 것이고 세상은 연기설에 의해서 돌아간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원인 행위에 대한 결과는 이런 복잡한 구조에 의해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기 때문에 밥을 먹으면 바로 배가 부르는 것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오랫동안 술을 먹으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조건에 맞을 때 결과가 일어난다. 이것은 붓다께서 깨달으신 우주의 원리이다.


이런 인연설에 기초해서 우리가 사람을 중심으로 볼 때보통 업()이라고 한다. 지금 각각의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업이다.     


업의 종류     


그럼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원인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내 업은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업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조상업(祖上業), 시대업(時代業), 전생업(前生業) 이다. 이렇게 3가지 업에 의해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본다. 

                          


먼저 조상업이다. 조상업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부모의 유전자에 들어있는 DNA를 반반씩 받아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엔 부계와 모계로부터 받은 유전적인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외모와 기질을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부모 그 자체도 중요하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성품이 착하거나 악하거나, 등등, 어떤 부모에게서 양육을 받는가 하는 것도 조상업에 들어간다.


두 번째는 시대업이다. 시대업은 어느 시대에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시대적인 환경에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혹은 그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은 어떤지에 대한 것이다. 조상업에는 가정환경이 포함된다면 시대업은 사회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생업이다. 이 전생업은 전생에 심어놓은 씨앗에 의해 이생에 열린 열매와 같다. 전생에 살아온 삶의 총합이 씨앗이라면 이생에 받을 운명이 열매인 것이다. 이 전생업은 조상업과 시대업에도 관여한다. 왜 하필 그런 부모와 형제자매를 만나게 된 건지, 왜 하필 이 나라의 이 지역에 태어난 건지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부모의 수많은 유전자 중에서 왜 나의 유전자가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도 포함한다. 전생에 살아온 삶의 결과에 따라 이생에 받는 삶이 정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조상업의 유전적인 부분과 전생업이 나의 기질을 만들고, 시대업과 조상업의 일부분이 환경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런 기질과 환경에 의해 특정의 성격을 가진 ‘나’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살아가면서 나에게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전생업이다. 전생업은 고비마다 나의 인생에 관여한다. 전생에 심어놓았던 원인의 씨앗이 지금 이생에서 열매가 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사람은 그 열매가 쓰든 달든 선택할 수 없다. 이미 정해진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업은 숙명?     


그렇다면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전생에 심어둔 씨앗에 의해 받은 열매라 할지라도 그 열매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과거생에 만든 결과로서의 삶일지라도 그 열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따라 미래생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씨앗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그 열매에 있는 씨앗을 어떻게 다룰지 그리고 햇살과 물과 토양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비록 업이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받아야 하는 숙명적인 상태’라고 할지라도 그 숙명을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갈지를 정하는 것은개인이 만들어 갈 미래의 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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