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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Jul 16. 2022

7. 선천적 괴로움

- 괴로움의 씨앗

괴로움은 선천적인 괴로움이 있고 후천적인 괴로움이 있다. 그중에 선천적인 괴로움은 태어남, 늙음, 병듬, 죽음등과 같은 인간의 태생적인 괴로움과  외모, 기질, 환경에 의한 것은 숙명적인 괴로움이다. 여기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의 개념이 숨어있다.


태생적 괴로움


태생적인 괴로움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괴로움을 말한다. 태어나서 나이를 먹고 아프기도 하며 늙어가면서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사람이 병들지 않고 늙지 않으면서 죽지도 않는다면 괴로움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병이 들어서 괴롭고 늙어서 서러우며 죽음이 두려워진다. 이런 근본적인 괴로움은 태어난 인간이 가지는 필연적 괴로움인 것이다.


숙명적 괴로움


숙명적인 괴로움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타고난 능력과 환경에 의한 괴로움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태어났다는 자체를 빼고는 평등이란 말을 붙일 수 없다.


첫째는 외모와 재능이 다 다르다. 사람들이 아름답고 추한 것에 대해 좋아함과  싫어함을 생기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외모는 쓸모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그런데 외모의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좋고 싦음이 생기고, 이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외모에는 얼굴, 체형, 피부색, 목소리, 건강 등 개인의 개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진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이 처음으로 생기는 것은 이러한 외모에 의한 것이다. 타고난 외모만큼이나 타고난 재능과 체력도 인생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지능을 포함한 재능과 타고난 체력은 그 사람의 인생에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


둘째는 태어난 환경이다. 태어나보니 나였을 뿐 아니라 태어나보니 우리집이었던 것이다. 내가 원해서 그런 환경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환경은 부모님의 생존유무부터 부모님의 성격과 지성, 학력과 재력 등 그리고 형제들과의 관계도 포함한다. 이 또한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어떤 형제자매를 갖고 첫째인지 둘째인지 막내인지도 큰 영향을 끼친다. 가정은 사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작은 사회이다. 형제자매는 경쟁자이자 협력자이다. 이 작은 사회에서 배우는 사회성이 세상에 나가 새로운 집단과 만날 때 필요한 수단이 된다.


 셋째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력(氣力), 즉 에너지이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만의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보통 사람들은 10을 기준으로 할 때 5~7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본다.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은 8~9 정도이고 에너지가 약한 사람은 2~4 정도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타고난 에너지가 다르다. 대체로 건강한 사람들이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면 이러한 에너지는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가?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고 사람을 상대할 때 필요하다. 몸이 힘들고 지쳤을 땐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힘든 경우가 있다. 타고난 에너지가 작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쉽게 지치고 힘들어진다. 이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감각을 생각해보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감촉을 느낀다.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을 향해 열려 있고 세상과 접촉하고 있다. 이렇게 접촉하는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우리가 에너지를 가지고 집중을 할 때, 그 감각의 대상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감각이 열려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과 집중을 해서 느끼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더구나 몸이 약한(타고난 에너지가 적은) 사람들은 세상과의 접촉에서 쉽게 에너지가 소비된다. 게다가 그러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는데 시간이 일반사람들 보다 오래 걸린다.  예를 들면 불량이거나 오래 사용한 휴대폰 배터리처럼 100% 충전이 되질 않고 쉽게 닳아지며 다시 재충전에도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보통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괴로움보다 선천적으로 더 큰 괴로움을 느낀다. 더구나 이러한 육체적인 감각이나 정신적인 감수성이 더 민감한 사람들은 이보다 더 큰 고통을 느낀다.




이렇게 운명의 출발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러한 선천적인 운명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주어진 운명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운명적이고 보수적인 삶이 아니라 개척가능한 개인적인 혁신이 가능하다는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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