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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Aug 22. 2022

10. 욕망(慾望)

다섯 가지 괴로움의 근원

사람은 욕망 없이 살 수 없다. 욕망을 통해 생존하고 번식하며 인간이라는 종을 이어 나간다. 욕망은 사람이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욕망은 사람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생물도 가지고 있다. 모든 동물과 식물도 욕망이 있는 것이다.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고 살기 위해서는 욕망을 가져야 한다. 일단 먹어야 살 수 있고, 번식해야 종을 이어 나갈 수 있으며, 잠을 자야 휴식을 취하고 먹고 마시고 번식할 준비가 된다. 식물의 경우 욕망에 대한 인식이 없을 뿐, 이들 역시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불교에서는 욕망이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욕망이 없다면 생존의 불가능한데 괴로움의 원인이라니…, 그렇다면 인간에게 괴로움은 필수적이라 말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의문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욕망이 있다. 오욕(五慾)이라고 한다. 다섯 가지 욕망은 식욕(食慾성욕(性慾수면욕(睡眠慾이익심(利益心명예심(名譽心) 등이다. 이 중 앞의 세 가지는 생리적인 욕구이자 욕망이며 뒤의 두 가지는 사회적인 욕망이다.                         




생리적 욕망     


생리적 욕망에 해당하는 세 가지 욕망을 불교에서는 삼독심(三毒心)이라고 하며 탐(貪)ㆍ진(瞋)ㆍ치(痴)라고 하여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한다. 탐심은 탐욕이고, 진심은 분노이며, 치심은 어리석음(무지)이다. 탐심은 식욕과 맞닿아 있고, 진심은 성욕과 맞닿아 있으면 치심은 수면욕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살펴보면 대체로 식탐이 많은 사람이 탐욕이 강하고, 섹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노가 강하며, 잠자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경우가 많다.  

    

식욕()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생존 욕구이다. 세상의 어떤 생물도 에너지를 섭취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식물의 경우 땅, 물, 햇빛의 기본요소로 에너지를 갖게 되지만 동물의 경우는 식물이나 다른 동물의 살을 섭취해서 에너지를 얻고 생존해 나간다. 일반적으로 초식동물의 경우,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몸에 영양분을 축적하거나 식량을 비축하기도 한다. 육식동물의 경우는 사냥에 성공하는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사냥이 성공하면 최대한 많은 양을 먹는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렵이나 채집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식량을 사서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가 바로 탐심(貪心)이다. 탐욕은 이기적인 행동이다. 자기 육체를 위해서 필요한 만큼 이상으로 많이 먹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 이런 과식에 의한 행위는 현대인들에게 고혈압, 당뇨와 같은 병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감각적인 쾌락을 위해 했던 행위가 자신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기적인 행동은 처음에는 자신을 위하는 것 같지만 언젠가 자신을 해치게 된다.    

 

성욕(性慾)은 인간이 세대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존재 욕구이다. 자신의 존재성을 이어가는 방법으로 자식을 만드는 행위이다. 성행위는 자손을 낳기 위한 행위이며 성욕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동물의 경우 발정기가 존재한다. 발정기는 지역의 기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새끼를 포육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그렇다. 그 기간 새끼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정기가 정해진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로 인간에게는 특별한 발정기가 사라졌고, 더 나아가 성행위를 단순히 쾌락을 위한 행위로 사용한다. 이런 쾌락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분노하게 된다. 이것이 진심(嗔心)이다. 분노는 사람을 무분별하게 만든다. 감정에 휘둘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방해한다. 분노가 일어나면 마음의 진폭이 커지고, 그 진폭은 작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넓어진 공간은 분노가 가라앉으면 텅 빈 공간이 생기게 되고, 그 공간만큼 공허함이 자리 잡는다. 그러면 보통의 사람들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비어있는 공간을 또 다른 쾌락으로 이끈다. 많은 경우가 바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욕과 술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수면욕(睡眠)은 인간의 연속성을 위한 자존 욕구이다. 잠은 모든 동물이 자신을 충전하는 시간이다. 보통 사람들은 하루종일 자신을 사용하여 생활한다. 잠은 이런 삶에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을 돕는다. 다시 말해서 잠은 의식을 쉬게 하고 몸을 쉬게 하여 자신의 에너지를 재분배하여 다시 하루를 살아가도록 돕는다.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육체는 휴식을 취하고, 의식 일부분은 휴식을 통해 빈 공간을 만들어 주지만 다른 일부분은 자신을 확립하는 데 쓰인다. 잠재의식 속에 자아를 확립해 나가는 것이다. 자아가 강해지는 것을 어리석음 혹은 무지한 상태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아가 있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자아에 갇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고집한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주장에 대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타협하며 고집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자신만 옳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며 고집을 부리고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수면욕은 단순히 잠을 많이 자고 싶어 하는 욕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틀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포함하는 욕구이다. 이것을 치심(痴心)이라고 부른다.     


사회적인 욕망 

    

이에 더하여 사회적인 욕망인 이익심과 명예심이 있다. 이 둘은 유일하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갖는 특성이다. 앞의 생리적 욕망은 개체로서의 개인이 갖는 욕망이지만, 사회적 욕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욕망을 말한다.


이익심(利益心)은 재물욕(財物慾)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익심은 재물을 탐하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재물욕은 생리적 욕구의 식욕과 관계가 있다. 식욕은 탐욕과 연결되어 있고, 개체로서의 욕망인 탐욕이 재물욕이다. 이에 반해 이익심은 세상의 관계를 손해와 이익으로 보고관계에서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보려는 마음이다. 여기에서 손해와 이익은 물질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관계도 포함한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더 허물없이 친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관계에서 보면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친구들과 친한 경우가 더 많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교 때 친구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는 달리 미묘한 벽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는 손해와 이익에 대한 마음이 없이 만들어진 친구이기 때문이다.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특별한 계산 없이 좋다는 이유로 마음이 맞아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회라고 하는 곳은 내 약점은 감추고 강점을 강조해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만들려고 하는 경쟁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 마음이 맞는다는 이유로 사람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다. 이처럼 이익심은 관계에 있어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손해는 보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이다.`  

   

명예심(名譽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고동시에 그 마음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다. 즉, 타인에게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싶은 상대적인 인정욕구이다. 명예심은 권력욕(權力慾)과는 조금 다르다. 권력욕은 권력을 통해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싶은 마음이다. 또한, 명예심은 수면욕과 연결된 어리석은 마음인 치심(痴心)과는 다르다. 어리석은 마음인 치심은 자신의 존재가 영원하리라 생각하는 것이고, 명예심은 자신의 존재가 남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명예심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생각해서 하는 모든 행위도 포함한다. 어떤 경우,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졌다고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자결하기도 하는 것이다.


욕망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이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고 분별이 없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과도한 욕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정상적인 감정과 옳은 사고는 마비되고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게 된다. 욕망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 지배되는 것이다. 이렇게 욕망의 지배를 받으면 사실상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 감각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욕망의 불꽃을 바라보면서 이용하기는 해도 그 불 속에 뛰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욕망에서 한발 물러서서 보도록 하는 것도 명상에서 얻는 이익 중의 하나이다. 




* 불교에서는 욕구와 욕망을 같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는 차이가 있다. 욕구(慾求)는 생리적인 요구로 만족에 도달할 수 있지만, 욕망(慾望)은 정신적인 요구로 완전한 만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서 늘 갈구하는 상태를 갈애(渴愛)라고 표현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식욕, 성욕, 수면욕은 욕구로 보고, 탐심, 진심, 치심은 욕망으로 보고, 명예심, 이익심은 욕구와 욕망에 걸쳐져 있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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